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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강태은 프렌닥터연세내과 비만클리닉 부원장] 평생보장 부부보험

  • 기사입력 2019-02-2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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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가장 잘한 일은 내 남편을 만난 일이야” 20년을 함께 산 아내가 이런 말을 한다면? 내가 그녀의 남편이라면? 눈을 감고 상상해보자. 그런 아내는 어떤 모습으로 사람을 만나고 어떤 태도로 가정을 돌보고 어떻게 세상일을 풀어가며 살지. 잘은 모르지만 그녀는 활기차고 당당하고 지혜롭지 않을까?

작년 성탄이 무르익을 즈음 춥다고 게으름을 피우다 늦잠을 잤다. 바삐 출근 준비를 하다 핸드폰을 보니 반가운 후배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검지로 스크롤을 해야 할 정도로 절절한 사연에 곱게 화장한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됐다.

후배는 30년 이상 알고 지내던 동문이다. 필자가 동문회장을 할 때 부족함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20대 젊은 날 후배는 부모님의 반대로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몇 달 후 중매로 만난 남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에 팔짝 뛰며 ‘좋은 신랑 감별사’인 양 까칠한 언니 역할을 했었다. 그리고 자식을 낳아 각자의 삶에 젖다 보니 3년간 소식이 끊겼다.

후배는 암 수술 후 위기를 넘기고 항암 치료 중이라 했다. 퇴근 후 후배를 만나러 뛰어갔다. 상상과 달리 후배의 얼굴이 갓 태어난 아기처럼 평온했다. “괜찮아. 나 많이 행복해. 병에 안 걸렸다면 이 행복이 삶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거고 남편이 얼마나 날 사랑하는지 몰랐을 거야” 수다를 떨 때마다 남편이 일요일이면 침대에 딱풀을 붙인 듯 잠만 잔다는 둥, 리모컨으로 손가락운동만 한다는 둥 우스개 푸념을 했었다.

그런데 아내가 암 진단을 받자 고2 딸, 중2 아들의 아침밥은 물론 회사와 병원을 오가며 2년간의 간호를 씩씩하게 해 주었단다. 보호자 침대에 쪽잠을 자고 출근하는 아침이면 후배에게 매일 같은 말을 해 주었단다. “어제도 잘 견뎌줘서 기특해.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힘은 당신이야. 지금처럼 예쁘게 잘 지내고 있어” 아픔의 시간이 자신에겐 넘치는 사랑을 받는 인생의 절정기였음을 말하며 남편을 위해서 빨리 나을 거라고 웃음 띤 얼굴로 날 배웅했다.

사실 한 해가 저물던 2018년 연말, 지인들과 신년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주고받던 중 남편과 헤어져 홀로서기를 시작했다는 몇 친구의 소식을 들으며 속상함이 많았던 때 후배와의 만남은 영화 속에나 존재하는 아름다운 부부의 감동 실화였다. 걸어오며 남편을 떠올려봤다. “24년을 함께 한 내 남편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던 중 문득 좋은 남편을 만든 건 어쩌면 후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년 전에도 후배는 그랬다. 다소 이기적이고 거친 사람이 있어도 후덕한 누이처럼 있는 그대로 서로를 아껴줬다. ‘내가 회장을 하는 동안 동문회가 쇠퇴했단 욕은 안 들어야 한다’라는 얕은 이기심으로 행하던 내게 후배는 항상 넉넉한 웃음으로 동문회를 이끄는 힘을 주었다.

“좋은 남편을 만든 건 후배였구나! 난 24년 동안 남편에게 어떤 아내가 되어 주었던가! 세상의 평판과 냉정한 충고를 ‘사랑’이라 포장하며 남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까?” 우린 결혼이라는 성스러운 결합을 평생 청구 가능한 사랑 보장보험처럼 착각하며 산다. “네 사랑을 보여줘!”라고 부르짖으면서 내 사랑은 주고 있었는지. 처음 만나 상대의 맘에 들기 위해 날 바꾸려 애썼으면서 이젠 너만 바뀌면 된다며 서로의 기운을 빼고 있지는 않았는지. 부부는 늙어가는 서로를 어루만지며 “그래도 예쁘다” “당신이 제일 멋지다” 더 큰 응원으로 서로에게 다가서야 한다. 우리가 가장 나약해질 때, 우리가 가장 초라해질 때, 그리고 지금 가진 사회의 감투를 모두 벗어야 할 때, 내가 먼저 좋은 아내가 되어주는 것, 내가 먼저 좋은 남편이 되어주는 건 보장이 확실한 인생의 보험일 것이다.

“자기 같이 좋은 남자를 알아보는 걸 보면 내가 정말 똑똑한 것 같지 않아?” 어이없이 웃으며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에서 행복을 읽는다. 세월이 더 흘러 서로가 지팡이가 되어주는 삶의 끝자락에 도달할 때, 필자의 남편도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은 내 아내를 만난 것입니다” 말할 수 있도록 내가 먼저 좋은 아내가 되어주련다.

강태은 프렌닥터연세내과 비만클리닉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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