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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로명의 패션톡톡] 퓨전한복, 누가 돌을 던질수 있나
-4대 고궁 중심으로 퓨전한복 대여점 확산
-2030대 SNS서 하나의 놀이…일각에선 전통훼손 지적도
-전문가들 “대중의 취향 존중돼야…유행은 대중이 선택”


2030대 사이에서 퓨전한복 착용은 하나의 현상을 넘어 트렌드가 됐다. 사진은 퓨전한복.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전통한복도 아닌 ‘퓨전 한복’이 정체된 한복 시장을 비집고 들어왔다. 일각에서 ‘국적불명의 싸구려’라며 혀를 차는 사이에도 퓨전한복은 견고한 틈새시장을 형성했다. 대중은 값싼 대여 한복이 주는 ‘고급 경험’에 길들여졌고,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퓨전한복은 지난 2013년 고사해가는 한복시장에 불씨를 지폈다. 문화재청이 한복 고궁 무료 관람을 시행하면서 고궁을 중심으로 한복대여점이 하나둘씩 등장했다. 시간당 대여료는 단 1만~2만원. 현란한 퓨전한복은 제법 생소했지만 꽤나 신선했다. 명주, 인견, 삼베 등 자연 소재 대신 기름칠하듯 반짝이는 폴리에스테르, 나일론 등 저가 원단이 쓰였다. 금박과 레이스, 큐빅까지 장식하니 무대 의상에 버금가는 화려함을 자랑했다. 치마 속에 넣은 링 모양 뼈대, 허리 뒤로 묶는 리본 형태의 허리끈도 전통 복식과 달랐다.

낯 간지러운 애국심을 자극하는 퓨전한복은 2030대 사이에서 하나의 현상이 됐다. ‘배춧잎 한 장(1만원짜리 한 장)’이면 사진도 추억도 남길 수 있다. 이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한복 체험 ‘인증샷’은 하나의 놀이가 됐다. 이를 증명하듯 2015년 1만3000명에 불과하던 한복 차림 고궁 관람객은 지난해 63만명까지 증가했다. 4대 고궁을 중심으로 생겨난 한복대여점들은 중국에서 생산한 저가 퓨전한복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지탱했다.

수요층이 두꺼워지면서 지탄의 목소리도 커졌다. 종로구청은 퓨전한복의 고궁 무료입장을 금지하겠다며 공식 입장을 밝혔고, 곳곳에서 “전통을 훼손한다”며 볼멘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퓨전한복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대중적 취향은 하나의 현상일 뿐, 찬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김민자 전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는 “퓨전한복은 대중이 선호하는 키치적(kitschㆍ질이 낮지만 친숙한) 감각을 포착해 자연스럽게 대중의 삶에 스며들었다”며 “유니클로, H&M 등 스파(제조ㆍ직매형 의류) 브랜드가 명품 브랜드보다 저렴한 소재를 쓴다고 해서 이를 법으로 규제할 수 없듯, 대중에게 특정 취향을 강요할 수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또 전통한복 조차 단 한번도 똑같았던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삼국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개화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복식은 5000여년 동안 끝없이 변화했다. 대중들이 전통한복으로 인식하는 하후상박구조(상체는 밀착되고 하체는 풍성)는 조선시대 중ㆍ후기에 와서야 정립됐다는 것이다.

금기숙 전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는 “유행은 법이나 규제로 만들어질 수 없고 오로지 대중이 스스로 선택했을 때에만 만들어진다”고 했다. 과거 고려말과 조선시대에 국가는 백의를 금지하는 ‘백의 금령’을 내려 동방국의 색인 청색 옷만 입도록 강요했지만, 오히려 백성들은 백의를 즐겨 입으며 스스로를 ‘백의 민족’이라 칭했다. 1960~70년대에도 경찰이 단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했지만 오히려 더 세련된 패션으로 주목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들불처럼 번지는 것이 유행의 속성이며 전통한복의 발전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패션에는 정해진 답이 없으며, 그 방향을 이해하는 것만이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했다.

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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