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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 강제징용 13년만에 승소] ‘65년 청구 협정’ 흔들…기로에 선 韓日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30일 2014년 사망한 여운택 씨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사진은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일제피해자공제조합 등 시민사회단체 주최로 2010년 4월 7일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 정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징용피해자인 여운택 씨가 외교통상부에 항의하는 모습. [연합뉴스]

대법 ‘식민지배 불법’ 판단…외교는 과제
‘샌프란시스코 조약’ 서 빠져 배상길 막혀
정부, 외교갈등 비화 방지 구체방안 마련


강제징용자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이미 소멸했다는 정부의 공식입장이 대법원 판결로 뒤집어지면서 ‘65년 청구협정 체제’를 근간으로 이어졌던 한일관계도 불투명해졌다. 정부는 법원 판결이 외교갈등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시나리오별 대응방안을 구축하기에 나섰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 일본 외무상은 31일 대법원 판결에 대한 후속대응을 논의하기 위해 통화했다. 외교부는 이날 강 장관과 고노 외무상이 전화협의에서 대법원 판결에 대한 양국 정부의 입장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특히 판결의 취지를 설명하고, 민관 합동으로 범정부차원의 입장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 장관은 아울러 양국이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협력을 지속해 나갈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정부는 일단 민관합동 위원회를 구성해 대응방안을 마련한다는 명분으로 시간끌기에 들어갔다. 법원판결이 끼칠 수 있는 외교적 파장을 관리하기 위한 차원에서의 조치다. 외교부 관계자는 “법원 판결을 존중하되, 제반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응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 직후 고노 외무상은 “한국 대법원 판결은 수교 이후 양국관계의 법률적 기반이 된 한일 청구권협정을 일방적으로 훼손하는 것”이라며 “한국 정부의 단호한 조치를 요구했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고노 외무상은 이후 이수훈 주일한국대사를 초치, 일본 정부의 입장이 담긴 외교문서를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일본은 한국 정부가 대법원의 판결을 수용, 일본기업에 개인배상을 강제집행하거나 일본내 일본기업에 대해서도 개인배상을 요구할 경우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한국내 일본기업 철수 및 대한투자 철회 권고 ▷한일 투자보장협정(BIT)에 대한 투자자-국가간 분쟁해결(ISDS) 절차 등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일본의 ‘ICJ 제소’ 카드는 이번 판결에 대한 국제여론전을 본격화하는 차원에서 꺼내졌다. 일본 소식통은 “일본도 한국이 ICJ에 가입했지만 규정 36조 2항의 ‘강제관할권’을 수락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제소를 추진하게 되면 한국 정부의 일방적인 조약파괴와 국제법 위반을 국제사회가 알게 된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 입장으로서는 부담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라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는 합법이었다”며 “한국이 주장하는 ‘전쟁범죄’는 국제법상 맞지 않는 논리”라고도 주장했다.

실제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은 과거사 문제를 불분명하게 처리한 채 한일관계를 정상화한 조약이다. 1951년 제2차 세계대전 종식을 위해 미국 등 연합국 48개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한국은 참여하지 못했다. 대신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후속조치인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재정적 채권ㆍ채무 관계’를 정리하는 것으로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덮을 수밖에 없었다.

한 외교 전문가는 “지난 54년간 미봉으로 남겨뒀던 과거사 청산없이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 판결”이라며 “1965년 체계의 한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한일 협력모델을 구상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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