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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조현용 경희대 교수] 한글날은 한글과 한국어의 날
한글날은 사실 ‘글의 날’입니다. ‘말의 날’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순우리말을 쓰자고 한다든지, 우리말이 외래어에 오염되었다든지 하는 말은 한글과는 상관없는 말이기는 합니다. 한글날을 문자의 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자어나 외래어도 한글로 표기하면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한글과 한국어를 혼동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류가 많습니다. “한글이 배우기 쉽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한국어는 배우기 쉽다”고 한다든가, “한국어는 매우 과학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한글과 한국어를 혼동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국어는 학자의 연구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비교적 배우기 어려운 언어로 알려져 있습니다. 높임말이나 복잡한 어미의 발달이 언어체계가 전혀 다른 외국인에게는 고통스럽게 다가올 겁니다.

물론 우리말과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한국어가 제일 어려운 언어는 아닙니다. 일본이 대표적이지요. 일본인에게 가장 배우기 쉬운 언어는 한국어입니다. 중국인이나 베트남인에게도 한국어는 아주 어려운 언어는 아닙니다. 한자어라는 공통점 때문에 어휘 학습에서는 편리함도 있습니다. 몽골이나 터키처럼 계통이 같은 언어에서도 한국어는 비교적 쉬운 언어에 속합니다.

한국어가 과학적이라는 말은 한글을 말하려다가 잘못 말한 것이겠죠. 그런데 언어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말은 오히려 과학적이나 논리적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멉니다. 한국어는 ‘풍부한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에서 형용사가 발달했다는 말은 감정이나 상황, 주변의 변화를 묘사하는 데 적절한 언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색깔을 나타내는 다양한 표현을 보세요. 노란색은 노랗고, 누렇고, 누리끼리하고 샛노랗고, 싯누렇습니다. 맛은 어떤가요? 달고, 달달하고, 달콤하고, 달짝지근하고, 들쩍지근합니다. 아픔도 다양하지요. 아리고, 쓰리고, 쑤시고, 지끈거리고, 얼얼하고, 뻐근합니다.

의태어가 발달한 것도 비슷한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합니다. 모양을 묘사하는 다양한 의태어가 발달했다는 것은 우리 조상이 주변의 변화에 관심이 깊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음과 모음을 바꾸면서 다양한 표현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한글이 과학적이라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한글은 잘 알다시피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만들었고, 글자 모양에 언어학적 원리를 담아서 세계의 언어학자들도 감탄하는 문자체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글은 정보화 사회로 오면서 더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휴대전화의 문자판을 보면 감탄이 나올 정도입니다. 최근에는 한글의 글자모양에 생명을 불러 넣기도 합니다. 기호나 암호 같기도 한 한글이 사물이나 감정의 모습을 잘 담는 글씨체로 다시 태어나기도 합니다. 한글은 글씨가 그대로 예술이 되기도 합니다.

한글날은 글의 날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말의 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우리말이 지나치게 거칠어지는 문제나 무분별한 외래어의 사용은 늘 주의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또한 괜히 어려운 말을 쓰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세종께서 한글을 창제하신 뜻에는 소통이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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