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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취객들 폭언ㆍ폭행에 ‘동네북 된 경찰’…징계 위기ㆍ나홀로 소송
영등포역에 쓰러진 주취자를 일으켜 세우는 경찰관들. [사진=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주취상태 공무집행방해 지난해 9048건
-수갑채워 ‘권익위 징계권고’…일부 ‘민사소송’ 제기 반발
-경찰 ‘엄중대응’ 방침 불구 조직적 대응 ‘미적’

[헤럴드경제=유오상ㆍ김성우ㆍ김유진 기자]일선 경찰들이 ‘동네북’ 신세가 됐다. 지구대와 파출소에 매일같이 몰려드는 ‘주취자 문제’, 그리고 여기에 대한 경찰 조직의 열악한 대응 방식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내 한 파출소에서 주취자가 난동을 부려서 수갑을 채웠지만 ‘징계’ 위기에 놓였다. 또 다른 경찰관은 주취자의 폭언에 분노해 혼자서 민사소송에 돌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주취자’는 일선 지구대와 파출소 근무자들의 골칫거리다. 인사불성인 주취자가 경찰관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연스레 경찰관들은 인권 사각지대에 노출되고 있다.

4일 경찰과 국민권익위 등에 따르면 경찰관을 대상으로 한 주취자들의 폭언과 폭행 사건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경찰에 검거된 공무집행사범 1만2883명 중 9048명은 주취상태에서 경찰관을 폭행한 경우였다.

▶주취 난동자 수갑채웠다고 ‘징계’?=공무를 집행하던 경찰관이 되레 징계 위기를 몰린 경우도 적잖다. 권익위는 지난달 서울 강서경찰서에 소속 경찰관 2명에 대한 징계 조치를 하라는 내용의 권고문을 전달했다. 관공서 주취소란 혐의로 체포한 피의자가 “경찰관이 자신에게 수갑을 채우는 등 과잉대응을 했다”는 민원에 따른 조치다.

해당 문제는 주취자의 처리과정에서 시작됐다. 지난 6월 서울 강서경찰서 소속 정모 경위와 김모 경장은 “만취한 승객이 택시기사를 상대로 욕설을 하는 등 행패를 부리고 있다”는 내용의 112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에 출동했다. 현장에서는 승객인 황모(35) 씨 일행과 택시기사가 행선지 문제를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출동한 경찰관들이 다른 택시를 안내하며 황 씨를 설득했지만, 황 씨는 오히려 “법 규정도 모르면서 경찰이 됐느냐”며 경찰관들에게 욕설했다. 재차 경고에도 욕설이 이어지자 경찰은 결국 황 씨를 경찰관 모욕 혐의로 파출소까지 임의동행했다.

파출소 안에서도 황 씨의 욕설은 계속됐다. 임의동행으로 왔으니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경찰의 말에도 황 씨는 “경찰이 아니라 깡패다. 못 배워 처먹었으면서 월급은 받아 처먹고 있다” 등의 욕설을 파출소 안에 있던 경찰관들에게 반복했다.

한 시간 가까이 소란이 반복되자 경찰은 관공서주취소란 혐의로 황 씨를 체포했다. 그러나 체포 과정에서 채운 수갑이 뒤늦게 논란이 됐다. 체포됐던 황 씨가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도 않았는데 경찰이 억지로 수갑을 채우는 등 공권력을 남용했다”며 진정을 한 것이다.

권익위 조사가 시작되자 경찰은 “당시 황 씨가 파출소 입구를 막으며 소란을 피워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며 “도가 지나칠 정도의 심한 욕설이 이어지자 휴대전화로 증거 영상을 촬영한 뒤 적법하게 체포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조사를 진행한 권익위는 “황 씨 일행이 위협행위를 했다는 증거는 없다”며 “오히려 경찰이 피의자에게 뒤로 수갑을 채우고 2시간 가까이 내버려두는 등 과도한 물리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권익위의 결정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권익위가 권고를 했다 하더라도 무조건 징계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당시 상황을 다시 살펴본 뒤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015년 991건에 불과했던 파출소ㆍ지구대 경찰관을 상대로 한 모욕 범죄는 지난 2016년 1346건까지 증가했고, 지난해 상반기 동안 접수된 사건도 590건에 달한다.

▶지난달 2일께에는 서울 양천경찰서에서는 소속 A 경관이 택시기사에게 욕설을 퍼붓고 지구대 내에서 소란을 피운 혐의로 벌금 100만원에 약식기소된 B 씨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B 씨는 지구대 내 난동으로 수갑이 묶인 상태에서 A 경관에게 반말과 욕설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내용은 동영상과 사진 등을 통해 확보됐고, 보고서를 통해 이미 내부적으로 전달됐다. 현재 민사소송은 서울 남부지방법원을 통해 제기된 상황이다.

A 경관은 헤럴드경제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상황에 대한 진술, 그리고 동영상과 사진 등 관련된 자료에 대해 이미 내부적으로 보고를 마친 상태”라면서 “더이상 할 말이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내비췄다.

경찰은 이같은 상황에 대해 ‘강경하게 대처한다’는 입장이지만 실상은 ‘속빈 강정’이다. 스스로 강력한 처벌기준을 정하지 않고 경찰관 개인에게 ‘민사소송을 적극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리며, 개인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소송 남발에 대한 우려를 잠식시켜야 한다’면서 지난 2014년에는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내렸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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