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적색 수배 요청 기준 확대
체포 피의자 신병인도 수개월 걸려
서울 강남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A(48) 씨는 지난해 당한 사기 탓에 아직 빚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해 유명 투자전문가의 말에 따라 1억원을 투자했는데, 대표가 투자금을 갖고 해외로 잠적해버린 것이다.
지난해 10월, A 씨는 국내 유명 증권사 외환딜러 출신의 투자자문사 대표 김모 대표를 소개받았다. 대기업과 유명 증권사 출신에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강남 유명 부동산 재벌 2세라는 말에 A 씨는 1억원이 넘는 돈을 김 씨에게 투자했다.
그러나 투자사 대표였던 김 씨는 투자 한 달여 만에 투자금을 챙겨 해외로 도주했다. 피해자만 40여 명에 피해액은 400억원을 훌쩍 넘겼다. 뒤늦게 해외 도주 소식을 들은 피해자들은 지난해 12월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그러나 김 씨가 이미 해외로 도주한데다 정확한 소재 파악도 힘들어 경찰 수사는 관할을 옮겨가며 답보 상태를 지속했다. 최근에서야 김 씨가 홍콩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경찰은 지난달 14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인터폴에 적색 수배를 요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적색 수배가 내려진 피의자는 한국이 아닌 제3국으로 출국이 불가능하다”며 “다시 도주할 우려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상당수 사기 사건은 주요 피의자들이 해외로 도주하고 경찰이 이를 뒤쫓는 식으로 진행된다. 피해자들은 고소장을 접수하고 수사기관의 추적을 기다리고 있지만, 정작 도주한 피의자가 좀처럼 잡히지 않아 그사이 피해 규모가 더 커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한 P2P 투자업체에 500여만원을 투자했던 직장인 김모(30ㆍ여) 씨도 아직 해외로 도주한 펀드매니저의 체포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김 씨는 “법률대리를 맡은 변호사도 ‘피의자가 해외로 도주한 경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 조언을 했다”며 “그 사이 피해구제를 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피해가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경찰은 해외 도주 피의자가 늘어나면서 지난해 인터폴 적색 수배 요청 기준을 대폭 확대했다. 사기 피의자의 적색 수배 요청 기준이 ‘피해액 50억원 이상’에서 ‘피해액 5억원 이상’으로 하향됐고, 보이스피싱과 사이버도박 등 조직범죄에 대해서도 적색 수배 요청이 가능하도록 관련 기준을 개정했다.
그러나 현지에서 수배자가 체포되더라도 신병이 한국으로 송환되기까지는 시일이 걸린다. 지난 1월 필리핀 현지 당국에서 체포됐던 사기 피의자 최모(32) 씨는 인터폴 적색수배자였지만, 현지 사법절차가 끝난 지난달에야 한국으로 신병이 인도됐다.
유오상 기자/osyo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