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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여행’은 정말 가능한가?…알쏭달쏭 시간의 비밀
“솔직히 말해서 그렇다고 내가 3차원주의가 옳다고 확신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3차원주의를 비교적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입장에 선 이유는 상대성이론과 관련된 몇몇 현상들 때문에 3차원주의가 과소평가를 받고 있고, 믿기 어려운 이론일수록 더 믿는 요즘 사람들의 경험 때문에 4차원주의가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시간여행 과학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에서)
‘인터스텔라’‘닥터후’등 시간여행 콘텐츠 붐
‘시간은 흐른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3차원·4차원주의, 철학·과학 관점서 논쟁

3차원주의 넘어선 ‘관계적 3차원주의’ 제시
뉴턴·칸트 포섭한 보편적 시·공간 독창적

‘나는 샐러리맨이다.’

철학박사 김필영씨가 쓴 ‘시간여행’의 첫 문장이다. 미당 시인의 ‘아비는 종이었다’는 고백 만큼이나 예사롭지 않은 이 문장은 그가 철학에 매료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제격이다. 20대 후반부터 50을 넘긴 지금껏 샐러리맨인 그는 직장에 다니면서 짬을 내 석·박사과정을 밟은 소위 ‘회사원 철학자’다. 그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알기쉬운 철학대중교양서로 냈다. 21세기 가장 뜨거운 주제 중 하나인 ‘시간’을 과학과 철학의 관점에서 거시적으로 다루기는 처음이다.

시간여행은 과거 공상과학만화에서나 그려졌지만 최근 영화 ‘인터스텔라’ 등 수많은 영화가 나오면서 일반의 관심이 높다.

시간여행이란, 정의를 처음 내린 분석철학자 루이스(1942~2001)에 따르면, 시간여행자의 개별시간과 외부시간이 일치하지 않는 여행이다. 즉 나의 개별시간(이를테면 머리카락이 자라는 시간)이 한달 흘렀는데, 표준시와 같은 외부시간이 1년이 흘렀다면 미래로 여행한 것이다.
지은이는 우선 시간을 보는 관점을 3차원주의와 4차원주의로 구분, 시간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해나간다. 가령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과거와 현재, 미래가 지금 똑같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4차원주의자다. 반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시간 개념인,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며 오직 현재만 존재한다는 시각은 3차원주의다.

많은 현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데로 기울고 있다.

형이상학자 반 클리브 남부캘리포니대 교수는 특수상대성이론을 들어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제시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시간의 흐름은 관찰자와 관찰대상의 상대속도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적절한 상대운동을 하면 관찰대상은 관찰자의 과거나 미래로 갈 수 있다. 또 일반상대성이론도 시간여행을 뒷받침한다. 즉 블랙홀 주변과 같이 중력이 강한 지역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가므로 강한 중력에 있던 사람이 약한 중력의 지역으로 오면 과거로 가게 된다.

지은이는 시간여행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나 BBC드라마 ‘닥터후’에서 보여지는 시간여행은 ‘점프형 시간여행’이다. 블랙홀로 들어가서 화이트홀로 나오는 게 실제 가능한 경우, 갑자기 허공으로 사라졌다가 미래나 과거로 나타나는 시간여행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쿠퍼가 중력이 강한 행성에서 3시간 머물고 우주선으로 돌아오니 23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과 같은 개별시간의 속도가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경우는 ‘시간지연형 시간여행’이다. 나머지는 ‘순환형 시간여행’으로 특정 궤도로 가다보면 과거로 가게 되는 경우다.

지은이는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다는 3차원주의와 가능하다는 4차원주의를 둘러싼 학자들의 긴 논증과 반론의 과정을 흥미롭게 들려준다.

1975년의 앨비스 프레슬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인 1960년으로 가서 젊고 날씬한 앨비스를 만나는게 가능할까를 놓고 벌어진 ‘앨비스는 날씬하면서 동시에 뚱뚱할 수 있을까’란 앨비스 패러독스 논쟁, 2018년의 터미네이터는 1984년으로 갈 수 있을지에 대한 논쟁 등 논리적 모순과 이를 반박하고 가능성을 제시하는 학자들의 논쟁을 알기쉽게 풀어 놓았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4장에서 지은이가 제시한 보편시간 개념이다. 지은이는 여기에서 종래 3차원주의를 넘어서는 ‘관계적 3차원주의’를 제시한다. 

이는 근대 시간개념의 두 축인 뉴턴의 절대주의와 라이프니츠의 관계주의 시간개념과 함께 칸트의 형식주의 시간개념을 포섭한 개념이다. 4차원주의에 의해 폐기된 듯한 3차원주의 시간개념을 되살려 놓은 모양새다.

즉 칸트로부터는 시간과 공간이 실재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라이프니츠로부터는 시간과 공간은 물체들 간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점을, 또 뉴턴으로부터는 시간과 공간은 물체의 운동의 기준이 된다는 점을 받아들여 새로운 시간과 공간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다.

보편적 시간과 보편적 공간은 물체들간의 관계이자, 물체운동의 기준이 되는 시공으로 경험적으로 실재하는 시간과 공간이다.

저자는 종래 3차원주의가 뉴턴의 절대주의와 동일시된 건 4차원주의자들이 덮어씌운 것이라며, 보다 포괄적인 ‘관계적 3차원주의’를 통해 3차원주의의 지평을 넓힌다.

우주선 사고실험과 쌍둥이 사고실험을 통해 보편공간과 보편시간을 추론해나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지은이는 이 두 실험이 “3차원주의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라거나 4차원주의에 대한 결정적인 반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며, “거의 사라져가는 3차원주의를 되살릴 수 있는 불씨를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책은 시간을 둘러싼 논쟁과 21세기 가장 관심을 모으는 4차원의 얘기까지 시간의 모든 것을 일러스트까지 더해 알기쉽게 풀어썼다. 평범한 샐러리맨은 왜 철학에 빠졌을까? 지은이는 그 과정을 책의 서문격인 ‘들어가며’에 적었는데, 그런 이들이 한 둘이 아니란 사실이 미소짓게 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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