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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건 X파일-종암살인사건①]10년지기 살해ㆍ암매장하고도 ‘태연’…경찰과 치열했던 ‘심리싸움’
서울 종암경찰서 형사팀이 경기도 포천 묘지공원 부근에서 실종자를 찾고 있는 모습.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 제공]

-30대 “친한 형 만나러 간다” 2000만원 대출받고 실종
-용의자는 범행 부인 일관…수사 도중 유서 남기고 잠적
-경찰 수색 등 노력…사체ㆍ범행도구 등 발견에도 태연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처음엔 단순 가출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4월 27일 새벽 집을 나선 유모(33) 씨가 10년지기 헬스장 형을 만나러 간다고 한 뒤 3일째 들어오지 않았다는 신고가 서울 종암경찰서에 접수됐다. 유 씨는 사회성과 지능이 다소 떨어져 집, 회사, 헬스장만 다녔는데 헬스장 관장인 조 모(46) 씨가 유일한 친구였다. 그가 친한 형으로부터 잔인하게 살해됐을 거라고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다.

경찰이 살인사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건 조 씨의 미심쩍은 행적 때문이었다. 경찰이 처음 조 씨를 임의 동행했을 때 그는 “유 씨를 만난 적이 없다”고 잡아 뗐다. 그러나 분석 결과 그는 실종 당일 서울 도봉구 도봉산역에서 유 씨를 차량에 태워 경기도 포천 공원묘지로 간 것이 확인됐다. 형사들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주변인 탐문 등을 통해 실종 전후 조 씨와 유 씨의 행적을 쫓기 시작했다.

▶유력 용의자는 발뺌하다가 유서 쓰고 도주=경찰은 다음 조사에서 조 씨에게 정황 증거를 들이대며 강하게 추궁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유 씨를 만난 적이 있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아내와 불화가 있어서 자살을 하려고 포천에 가는 길에 유 씨를 만났고, 포천 시내에 내려줬다”면서 “구체적인 장소는 기억이 안 난다”고 주장했다.

하는 수 없이 경찰은 다음날 유 씨를 내려줬다는 장소를 함께 가보기로 약속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CCTV 확인결과 유 씨를 포천 시내에 내려줬다는 것 역시 거짓말이었다. 쉽지 않은 사건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건 그 시점부터였다. 조 씨의 가느다란 눈가에서는 도무지 속을 엿볼 수 없는 침착함이 있었다.

불행한 예감은 빗겨가지 않았다. 경찰이 조 씨와 만나기로 한 날, 그가 유서를 남기고 사라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차에 “형사님들 죄송하다. 그저 내 자신이 수치스러워서 가는 것이니 도망간다고 오해는 하지 말아달라”는 취지의 메모까지 친철하게(?) 남겨뒀다. 조 씨의 휴대전화을 분석한 결과 그는 전남 여수의 펜션과 화순에 숙소를 5월 초에 미리 예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강력 1팀을 광주터미널로 급파했다. 경찰은 가장 먼저 고속버스 내 블랙박스를 분석해 용의자를 확인했다. 그는 검정색 모자를 눌러쓰고 한 손에는 호두과자 한 봉지를 들고 있었다. 도저히 자살을 하기 위해 유서를 써놓고 나간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명백한 도주였다. 

5월 7일 피의자 조 씨 모친 묘소 부근에서 실종자 유 씨가 발견됐다.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 제공]
과학수사 요원들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는 모습.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 제공]

▶사체ㆍ범행도구 발견…살인사건으로 전환=실종자 행적을 확인하는 팀에선 새로운 내용이 나왔다. 유 씨가 조 씨를 만나러 가기 전날, 은행에서 2000만원을 대출 받은 것이다. 지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는 조 씨의 권유에 따라 지방에서 헬스장을 함께 오픈할 계획이었다. 실종 당일은 조 씨와 헬스장을 둘러보기 위해 지방에 내려가기로 한 날이었다. 또 평소 유 씨는 조 씨에게 순종적인 동생이었는데 헬스장 사업을 준비하면서 조 씨와 금전적인 갈등이 있었다는 것도 확인됐다. 

수사 5일째인 5월 7일 경찰이 파악한 주요 키워드는 ‘10년지기 헬스장 형’, ‘경기도 포천 묘지’, ‘2000만원’ 세가지 밖에 없었다. 형사과 회의에서는 유 씨의 사체가 발견되지 않은 만큼 단순 가출일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포천 묘지 수색을 지휘하던 강력 1팀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형사들은 본능적으로 사체가 발견됐음을 직감했다.

유 씨는 조 씨의 모친 묘소에서 50m 떨어진 등산로 비탈길 땅 밑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묘소 근처에 나무로 빽빽한 곳에 흙이 수평으로 깎인 듯한 지점이 있어 혹시나 하고 삽으로 팠더니 검정색 의류가 나왔다. 숨진 유 씨였다. 당시 유 씨를 발견했던 강력1팀장은 “분명 어머니 묘소 근처에 묻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근처를 샅샅이 뒤졌다. 수사가 난항을 겪자 유 씨가 우리를 부른 것 같다”고 회상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결과, 유 씨는 둔기에 의해 후두부 우측을 가격당해 머리뼈가 골절돼 지주막하 출혈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께름칙했던 실종 사건은 살인사건으로 공식 전환됐다. 

5월 11일 경기도 포천에서 서울로 나가는 도로 부근 물가에서 범행도구와 유 씨의 유품이 발견됐다.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 제공]
조 씨가 범행 당시 사용했던 바벨걸이 쇠봉.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 제공]

▶마트에서 태연하게 물 마시던 피의자…끝까지 범행 부인=문제는 도망간 피의자 조 씨였다. 경찰은 차를 두고 간 조 씨가 전라남도에서 대중교통을 타고 어디론가 이동을 해야 한다면 광주고속버스터미널을 지나가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집중 탐문하기로 계획했다. 조 씨는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됐다. 형사 한 명이 터미널 근처 대형마트에 CCTV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마트 안으로 들어갔는데, 조 씨가 정수기 앞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침착했다. ‘뭐 힘들게 여기까지 쫓아 내왔느냐’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조 씨의 범행을 증명할 직접 증거가 필요했다. 경찰은 수사 8일째인 5월 10일 그가 포천 묘지에서 서울로 가는 길에 정차한 8곳을 차례로 수색했다. 조 씨가 정차했던 구간들은 모두 도로 아래에 강이 흐르고 숲으로 우거진 곳들이라 수색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유 씨의 유품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 발견됐다. 강력 4팀장이 답답함에 도로 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수풀 사이 휴대폰 충전기의 가느다란 선이 눈에 들어왔다. 느낌이 싸했다. 수색팀이 근처 식당에서 낫을 빌려 2시간동안 수풀을 제거했더니 유 씨의 소지품과 범행에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일회용 장갑, 쇠봉 등이 발견됐다. 국과수 분석 결과 일회용 장갑과 바벨걸이에서 뺀 쇠봉에서 조 씨의 DNA가 검출됐다. 이튿날 그는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됐고 16일 검찰에 송치됐다.

조사 결과 사건 당일 유 씨가 조 씨의 어머니의 묘소를 찾은 것은 사업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헬스장 사업이 잘되게 해달라고 자신의 어머니 묘지를 정리하던 그를, 조 씨는 헬스장에서 가져온 바벨걸이용 쇠봉으로 내리쳤고 미리 파두었던 구덩이에 암매장했다.

지금까지도 조 씨는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그가 머물렀던 전남 쌍봉사에서 유 씨의 2000만원이 발견됐지만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를 담당한 프로파일러는 “가정에서 경험한 스트레스가 있었고, 늘 말을 잘 듣던 동생이 헬스장 운영을 두고 반대 의견을 보이자 극단적으로 분노를 표출한 케이스”라고 분석했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 북부지법으로 기소돼 선고를 앞두고 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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