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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핵정국’에도 계산기 두드린 대법원…‘헌재 통합’도 검토
사법행정권 남용문건 추가 공개

2016년 말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대법원이 정치권 동향을 분석하고 헌법재판소와의 위상 경쟁에 몰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국회의원들의 개헌에 대한 의식 수준을 ‘백지상태’라고 표현한 대법원은 헌재를 흡수통합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법원행정처가 31일 추가 공개한 196개의 사법행정권 남용 문건에는 ‘대통령 하야 정국이 사법부에 미칠 영향’이라는 문서가 등장한다. 기획조정실은 A4용지 40페이지 분량으로 작성한 이 문건을 통해 2016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로 자진 사퇴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개헌이 추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정 추진 동력을 상실한 정부보다는 국회가 주도하는 개헌이 이뤄지고, 야당의 입김이 상당 부분 반영될 것을 고려했다. ‘더민주당 내 법조인 출신 의원 명단을 작성하고, 사전 접촉할 필요가 있다’고 적은 뒤 의원별들을 ‘친노’와 ‘비노’로 나누고 친노를 다시 ‘친문’과 ‘정세균계’로 세분했다.

기조실은 문건에서 ‘개헌대응반’을 구성해야 한다고 적었다. 현직 판사들을 중심으로 17명의 이름이 담긴 명단도 작성했다. ‘접촉 대상이 되는 주요 인사와의 만남→정보 취득, 보고’라는 역할을 부여하면서도 ‘비상임 내부 자문역 상호간에는 서로를 몰라야 한다’면서 긴밀하게 움직일 것을 제안했다.

이처럼 대법원이 대통령 탄핵 정국을 개헌 논의를 주도할 기회로 삼은 것은 헌재와의 위상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대부분의 의원들이 개헌 과정에서 문제될 수 있는 법원/헌재 관련 쟁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적은 법원행정처는 ‘백지상태에 있는 의원들에게 개헌 국면에서 법원에 유리한 입장을 취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공세적 대응에 나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통합 필요성을 강조’, ‘헌재와의 관계 절연→정치적 사법기관으로 위상 절하’등의 문구도 등장한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법조인이기 때문에 대법원과 경쟁할 수 있다고 분석한 법원행정처는 다른 문건에서도 ‘정치학자 등 비법조인’이 재판관으로 임명될 수 있도록 해 헌재를 ‘정치적 기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한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위기에서도 대법원은 ‘헌재와의 위상경쟁’에 몰입했던 셈이다. 법원행정처도 다분히 이를 의식해 ‘(개헌 외부 자문위원)명단이 유출될 경우 법원이 헌재와의 관계에서 기관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정치적으로 행동한다는 치명적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철저한 보안 유지 필요’라고 적었다. 

좌영길 기자/jyg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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