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 한 호프집을 깜짝 방문해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체 사장, 청년구직자, 경력단절 여성 등과 즉석에서 ‘호프 타임’을 가졌다. 문 대통령은 “오로지 듣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왔다. 편하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호프집에는 청년 구직자 3명, 편의점ㆍ서점, 음식점ㆍ도시락업체 등 경영하는 중소상공인과 자영업자 5명, 근로자 1명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당초 고용노동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과의 만남인 줄로만 알고서 호프집을 찾았다가 문 대통령이 안으로 들어서자 깜짝 놀랐다. 이날 청와대에서는 문 대통령을 비롯해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김의겸 대변인, 탁현민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등이 참석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도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퇴근길 호프집 앞을 지나가던 직장인들도 호프집 밖 유리 앞으로 몰려와 문 대통령의 사진을 찍었다. 핸드폰 화면에 ‘대통령님 잘생겼다’, ‘임종석 잘생겼다’ 등 재미난 문구를 띄운 이들도 있었다.

문 대통령은 “제가 보안과 경호 문제 때문에 일정을 미리 알릴 수가 없었다. 지난 대선 때 소통을 잘하겠다고 약속하면서, 퇴근길에 시민들을 만나겠다고 약속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처음에는 퇴근하는 직장인들을 만나서 편하게 맥주 한잔 하면서 세상 사는 이야기를 가볍게 나누는 자리로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최저임금과 고용 문제 등이 심각하게 얘기가 나오는 상황이어서 그런 말씀들을 듣고자 자리를 마련했다”고 부연했다.

모두 자리에 착석한 뒤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종환 씨는 “건배들부터 하시죠”라며 건배를 제의했다. 이 씨는 “대한민국 사람들 다 대통령께서 아끼고 사랑해달라. ‘아싸’라고 (건배사를) 하겠다”고 했고, 참석자들은 다같이 “아싸”를 외쳤다.

[사진=연합뉴스]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자 건의사항이 쏟아져 나왔다.

이씨는 우선 “정부에서 정책을 세울 때 생업과 사업을 구분해주셨으면 한다”며 “대부분 생계형 자영업자다. 근로시간 문제 등 때문에 분배가 돼야 하는데 (안되니까) 정책에 불만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이어 “최저임금 같은 경우 좀 성장을 해서 (올려)주면 되는데, 경제가 침체돼 있지 않나”라며 “자영업자도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보다 못한 (소득) 실적이어서 가족들끼리 운영하려 한다”고 호소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태희씨 역시 4대보험 비용 때문에 편의점 점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취지로 호소했다. 청년 구직자 이찬희 씨는 정부의 취업패키지를 활용하는 데도 불구, 부담비용으 크다고 호소했다. 이 씨는 “한달에 (취업준비하는 데에) 80만 원 이상이 든다”며 “현재 자격증 3개 준비하고, 학원만 4개 다닌다. 그래서 그 정도가 교통비, 식비 포함하면 87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또다른 청년 구직자는 배준 씨는 “공무원 준비 3년햿지만 결과가 안 좋아 접고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한다”며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했는데 많이 안 구해진다. 많이 뽑지도 않고, 서비스직은 여성을 더 뽑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언어치료사로 활동하다 임신 및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이은영 씨는 “직업 특성상 파트타임이 활성화 돼있는 경우라 일 환경이 조성돼 있지만 쌍둥이를 낳아 아이 둘을 동시에 맡겨야 하고, 도우미께 인상된 최저임금 분을 주면서 버는 게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믿고 맡기면 좋겠지만, 제도들이 좀 더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울 수 있게 확충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아이들이 아직 4살인데, 부모애착이 초기에 중요하다고 해서 옆에 있는데 (일을 비우는) 시간이 늘어나면 날 수록 (일자리 시장으로) 돌아가는 게 불안하고 현실적으로 불안한 부분이 너무 많다. 그래서 또 다른 석사공부를 했다. 자격증도 새로 따고 부족한 부분을 이것저것 메꾸고 있지만, 아이들이 한번 아프면 둘이 번갈아 가면서 아프고 기본적으로 육아에 비용이 많이 드는데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들 내 꿈을 펼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고 했다.

중소기업 대표 정관천 씨는 “중소기업인 몇분 의견을 물어보고 메모를 해왔는데, 최저임금에 대한 중장기적 시야도 필요해보인다”며 “당장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 하냐 안하느냐가 아니라, 삶을 본질적으로 개선하자는 문제인데, 업종과 지역마다 경제환경이 다른데 기준점에 집착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업종별로나 지역별로 속도조절을 할 필요는 있지 않나 싶다”고 건의했다. 이어 “큰 틀에서는 동의하지만 주간 단위로 52시간을 적용하고 있는데, 계절적 상황이 다른 점도 고려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서울물가와 지역 물가가다르고 업종별로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 논의도 존재한다”면서 “한편으로는 최저임금 취지에 맞는, 최저임금 제도에서 어려움을 겪는, 임금을 제대로 못받는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게 최저임금인데, 직종에 차별을 가하면 취지에 맞지 않기에 쉬운 문제는 아니다. 앞으로 이런 논의를 많이 하겠다”고 했다.

한편, 김 대변인은 이날 행사 취지에 대해 “퇴근길에 가볍게 시민을 만나는 행사를 갖자는 방안은 여러번 얘기가 나왔지만 그동안 성사가 안됐다가 휴가 가기 전에 성사됐다”며 “대통령이 가볍게 하지 말고 지금 경제 문제와 관련해 어려움을 겪는 분들과 취업문제, 최저임금 문제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해 콘셉트가 크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munja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