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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속세 앞에 장사 없다”…가업포기 속출


‘가업상속공제’ 이용 분납해도
최저임금 상승 등 애로 산적
대기업·사모펀드 매각 줄이어


#1. A(40)씨는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마무리했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신 탓에 가업인 ‘식품회사’ 승계를 준비하지 못했다. 납부해야 할 상속세가 50억원에 이르는 것을 확인한 A씨는 세금을 일부 공제받을 수 있는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이용해 세금을 분납하기로 결정했다.

막대한 세금을 내기로 결정했지만 사실 막막한 상황이다. 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향후 10년간 현재 수준의 직원수를 유지해야 하지만 최저임금 상승, 경기악화 등으로 고정비 지출이 갈수록 늘고 있어서다. A씨는 “설비 투자를 통해 스마트공장으로 탈바꿈하고, 신상품 개발에 신경쓰고 싶었지만 올해만 해도 최저임금이 16% 이상 올라 예상보다 고정비가 많이 들고 있다”며 “투자는 고사하고 월급조차 챙기지 못해 허무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2. B씨는 부모님이 평생 키워오신 고철폐기물처리 업체 Y사를 상속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회사규모가 작아 납부해야 할 세금은 크지 않지만 시장환경 등을 고려해봤을 때 세금을 내면서까지 이어받을 만큼 성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랫동안 해외생활을 했던터라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이용하기 위한 조건 중 ‘재직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도 상속포기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6일 중소기업중앙회가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가업승계 계획을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 10곳 중 7곳(67.8%)이 가업승계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2년 전 조사 때보다 25.6% 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가업승계 의지가 큰 폭으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응한 대다수 기업들은 가업승계 과정의 애로사항으로 상속ㆍ증여세 등 조세 부담(67.8%)을 꼽았다.

실제로 가업승계의 길목에서 상속세 부담 등을 이유로 매각을 택하는 사례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올 1월 중견 가구업체 까사미아는 가업승계 대신 대기업인 신세계에 회사를 매각했다. 지난해 락앤락과 유니더스, 에이블씨엔씨 등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중견기업들이 대주주 지분을 사모투자펀드(PEF)에 팔았다. 이 밖에 농우바이오, 카버코리아, 휴젤 등도 창업주의 은퇴 시기와 맞물려 회사를 내놓았다.

2세 경영인인 한 중소기업 대표는 “장수기업으로 키우고 싶지만 상속세 앞에선 장사 없더라”며 “내부 사정을 공개하기 어려운 탓에 쉬쉬하는 형편이지만 바깥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경영인들이 세금 문제 때문에 승계 대신 매각을 택하고 있다”고 했다.

현행 최대 상속ㆍ증여세율은 50%에 달해 50억원을 상속하려면 세금만 25억원을 내야 한다. 가업승계 문제로 최대주주 지분을 이어받을 때는 30% 추가할증 돼 최고 65%의 실효세율을 적용받는다. 여기서 지분 감소에 따른 경영권 위협, 유류분을 둘러싼 가족 간의 분쟁 문제도 파생된다.

장수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취지에 따라 정부는 가업상속공제와 증여세 과세특례, 명문장수기업 확인제도 등을 도입했지만 요건이 까다로워 제한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2016년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은 중소기업은 전체 350만여개 중 60곳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매년 조건이 강화돼 20년 이상 가업을 꾸리면 적용되던 최고 500억원의 공제한도가 올해부턴 30년 이상일 경우에만 가능해졌다. 가업상속공제는 10년 이상 가업을 영위한 중소기업에 승계 시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제도다.

오현진 가업승계지원센터장은 “가업승계는 오랜 기간 축적된 기술역량 등 사회적 자산을 승계하는 제2의 창업으로 그 사회적 가치가 매우 높다”며 “가업승계 관련 세제 지원 외에도 가업승계 펀드를 조성하여 자금을 지원하는 등의 종합적 가업승계 지원정책 도입이 시급하다”라고 밝혔다.

정경수 기자/kwat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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