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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법·꼼수에 ‘무늬만 주52시간’될라
홍보직 ‘저녁 술자리’ 애매모호
일부 기업 ‘휴게시간 끼워넣기’
금융권 PC오프제 등 적극적
‘저녁이 있는 삶’ 실감하기도


지난 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가운데 직장인들 사이에선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기대와 편법이나 꼼수로 인한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과 정부가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일부에선 ‘무늬만 52시간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00인 이상의 사업장과 공공기관은 지난 1일부터 법정 근로시간이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됐다. 다만 처벌은 올해 12월까지 유예된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주 52시간이 제대로 정착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판단에서다. 50~299인 사업장 2020년 1월 1일, 5~49인 사업장은 2021년 7월 1일부터 법이 적용된다.

업무적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주 52시간을 넘을 수 밖에 없는 일부 직장인들은 여전히 불만이 크다.

10년 넘게 대기업 홍보직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모(44) 씨는 “홍보 업무 특성상 저녁마다 술자리가 있을 수 밖에 없는데 회사는 이를 근로시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며 “52시간제가 시행됐지만 근무 시간에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부서 간 회식은 노동시간에 해당하지 않고, 접대는 회사 측의 지시나 승인이 있을 경우에만 노동시간으로 간주한다. 특히 정유업계나 석유화학업계 등 특수한 분야에서는 우려가 여전히 크다.

약 3년을 주기로 대규모 공장 정기 보수 작업이 이뤄지는데 고도의 기술과 민감한 작업이 필요한 탓에 특수 인력이 2조 2교대로 약 한 달간 투입된다. 근로자 1명당 주당 약 83시간을 근무하게 되는데 탄력근무제를 도입하더라도 주당 52시간이 훌쩍 넘는 64시간이 된다는 것이 업계 측의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올해까진 유예 기간이어서 문제가 없지만 내년부턴 처벌을 피할 수 없어 걱정”이라며 “회사 차원에서 온갖 대책을 마련하고자 노력 중이지만 뾰족한 해법이 없다”며 우려를 표했다. 근무 시간에 휴게 시간을 끼워 넣는 편법도 등장했다. 일부 기업은 근로 시간 단축 방안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직장인 정모(33ㆍ여) 씨는 “시행 직전에서야 일방적인 52시간제 매뉴얼이 주어졌는데 회사 측이 근로시간을 줄인다는 이유로 휴게 시간을 포함시키기도 했다“며 “사실상 근무량이나 업무 시간은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처벌 유예 기간이라는 이유로 회사 측이 대화도 미루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반면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근로 시간 단축을 실감하는 직장인들도 있다.

특히 금융권에선 점심시간과 오후 6시 이후 컴퓨터가 꺼지는 PC오프제 등을 시행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백화점도 이번 주부터 개장 시간을 오전 10시 30분에서 오전 11시로 늦췄다.

직장인 강모(43) 씨는 주 52시간 적용 첫날, 높아질 삶의 질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강씨는 “어제 처음으로 오후 5시에 퇴근하고 바로 술자리를 가졌는데 훨씬 여유로웠다”면서 “술을 마시기 비교적 이른 시간인데도 술집에는 나 같은 직장인이 의외로 많더라”고 말했다. 이어 “퇴근 시간이 앞당겨지거나 야근이 줄면서 저녁약속을 좀 일찍 잡게 되지 않겠나”면서 “주 52시간제가 제대로 정착만 되면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질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주 52시간제가 안정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선 노사 양쪽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올바른 노동시장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당분간 과도기적인 시간은 불가피하다”며 “노동생산성을 높이되 근로자의 임금이 유지되도록 노사 간의 타협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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