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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증샷 찍으려 짓밟고 꺾고… 시름시름 앓는 한강공원 꽃밭
부케 만들고 귀에 얹고 ‘찰칵’
‘밟지말라’ 표지판 아랑곳안해


“꺾고, 밟고, 휘젓고…. 사진 한 장 찍는 데 꼭 저래야 하나요?”

지난 3일 오후 4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여의도한강공원에서 만난 김지숙(39ㆍ여) 씨는 공원 내 작게 만들어진 꽃밭에서 ‘인증 샷’을 찍고 있는 한 20대 연인을 보며 혀를 찼다. 두 사람은 꽃밭 안에 풀썩 앉고서는 수 분간 카메라를 응시했다.

남자 손에는 주변 꽃 몇 송이로 만든 ‘꽃 부케’가 들려있고, 여자 귀에는 방금 꺾은듯한 꽃 한 송이가 얹힌 상태였다. 자리를 뜬 뒤 남아있는 것은 먹다남은 떡볶이가 담긴 일회용 접시 뿐이었다.

개화철을 맞아 우아함을 뽐내야 할 한강공원 꽃들이 떨고 있다. 몇몇 공원 방문객이 사진에 담을 욕심으로 꽃을 훼손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일부 꽃밭에는 ‘제발 밟지 말라’는 표지판도 두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여의도한강공원의 한 꽃밭에 ‘밟지마세요’라고 적힌 표지판이 걸려있다. 이원율 기자/yul@
서울 여의도한강공원의 한 꽃밭에 먹다 남은 떡볶이가 담긴 용기 등이 방치돼 있다. 이원율 기자/yul@

이날 공원을 둘러보니 어질러진 꽃밭 모습은 쉽게 확인됐다. 꺾인 꽃줄기는 물론 발자국에 짓눌린 꽃송이도 보였다. 하도 밟고 앉은 탓에 없던 길이 생긴 곳도 나타났다. 이들 사이에서 일부 경고 표지판은 제 힘 발휘를 못하는 듯 너덜너덜했다. 고등학생 고모(18) 군은 “공원 꽃을 훼손하지 말라는 것은 가르치기도 민망한 것 아니냐”며 “상식에 벗어나는 처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공원 곳곳 만들어진 꽃 조형물도 수난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꽃 조형물에 달린 꽃송이가 무분별히 꺾여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한 방문객 무리는 사진 촬영 이후 꽃 조형물 틈에 물이 담긴 플라스틱 병을 꽂아두고 사라졌다.

직장인 배장현(33) 씨는 “우리 세금으로 관리하는 꽃을 우리 손으로 훼손하는 꼴”이라며 “해외 방문객도 많이 오는 곳에서 시민의식 민낯이 드러나는 것 같아 민망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현재 서울 12곳 전체 한강공원에서 꽃밭 9만7078㎡을 관리중이다. 예산만 매년 6억원이 든다.

꽃밭 규모가 큰 만큼, 이런 민폐 행위는 여의도한강공원과 함께 다른 한강공원에서도 발생한다. 지난해 기준 서울 전체 한강공원에서 꽃을 꺾는 등 무질서행위로 계도ㆍ단속된 건만 모두 970건에 이른다. 다만 이 안에는 악취와 소음 유발, 폭죽 등에 따른 계도ㆍ단속도 포함된다. 과태료는 5만원이다.

시 관계자는 “꽃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고심중”이라며 “지금도 계도ㆍ단속은 물론 곳곳에 포토존과 안내문을 두는 방식으로 꽃 관리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원율 기자/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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