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적도 아도 구분 없는 ‘무역전쟁’에 나섰다. 중국에 이어 동맹국에도 ‘관세폭탄’을 던졌다. 미국의 핵심 동맹인 유럽연합(EU)과 캐나다, 멕시코는 31일(현지시간) 미국의 철강ㆍ알루미늄 관세의 대상이 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대규모 ‘보복전’을 예고하면서 세계 무역질서는 혼돈의 시대로 접어들게 됐다.

미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EU, 캐나다, 멕시코산 철강 제품에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한다고 공표했다. 이에따라 미 동부시간으로 6월 1일 0시를 기해 해당국의 철강 제품에 25%, 알루미늄 제품에 10% 관세 부과 조치가 발효됐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자국 산업 보호를 명목으로 수입산 철강ㆍ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들 국가에는 관세 부과를 잠정 유예하며 협상을 벌였지만, 진통 끝에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이런 결정을 내렸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시작한 데 우려를 표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는 미국과 동맹국의 경제를 위태롭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래 서구 동맹에 가장 심각한 공격을 가했다”고 했다. ▶관련기사 9면

EU와 캐나다, 멕시코는 동일한 수준의 관세로 ‘보복전’을 치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의 장클로드 융커 위원장은 이날 브뤼셀 기자회견에서 “수 시간 내 보복조치를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EU는 그간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보복조치에 나설 것임을 밝히며 오렌지 주스, 피넛 버터, 청바지, 오토바이 등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혀왔다.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캐나다 외교부 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냉전시대 이후 캐나다가 시행하는 가장 강력한 통상 결정”이라며 166억캐나다달러(약 13조8000억원)에 해당하는 미국산 철강ㆍ알루미늄 제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멕시코는 트럼프 대통령의 ‘텃밭’을 옥죈다. 멕시코 경제부가 밝힌 보복관세 부과 품목에는 철강은 물론 돼지고기, 사과, 소시지, 포도, 치즈 등 농축산물이 대거 포함됐다. 이들 품목은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지지층이 몰려 있는 지역에서 주로 생산된다. 뉴욕타임스(NYT)는 동맹국 이외에도 미국 보호무역주의의 영향을 받은 중국, 러시아, 터키 등도 보복조치에 나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무역전쟁이 철강ㆍ알루미늄을 넘어 자동차로 확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 CNBC 방송과 로이터 통신 등은 이날 독일 경제주간 ‘비르츠샤프츠보헤’를 인용, 트럼프 대통령이 독일 고급자동차의 미국 시장 수입 금지를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양영경 기자/y2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