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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격화되는 ‘性戰’-下. 해법은?]여자라서 안되고, 덜 받고…여자로 태어난 게 죄인가요?
-직장 성차별, 육아 차별 연이어 겪으며 좌절과 분노↑
-“강남역 살인ㆍ미투운동ㆍ몰카…여성이라 당한 것”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최근 출산휴가를 마치고 복직을 한 8년차 은행원 김모(32ㆍ여) 씨는 그동안 근무했던 회사 본점이 아닌 집 근처 지점으로 발령을 받았다. 승진시험에서도 줄곧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던 그였지만 아이를 낳은 후 모든 게 바뀌었다. 김 씨는 자신과 함께 입사했던 남자 동기가 본점에서 일하는 것을 볼 때마다 억울한 감정이 든다. 그는 “출산 전후 여성의 경력은 모두 단절되는 것 같다. 이래 놓고서 애 낳으라고 하면 누가 낳겠느냐”며 꼬집었다.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몰카 사건 피해자가 남성이어서 경찰이 이례적으로 강경한 수사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 출구 인근에서 공정한 수사와 몰카 촬영과 유출, 유통에 대한 해결책 마련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제공=연합뉴스]

김 씨는 그동안 여성 인권에는 관심조차 없었지만 지난 19일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 집회에 참여했다. 여성 몰카도 직장 내 승진차별처럼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차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는 “직장 내 성차별을 겪으면서도 이겨내야 하는 ‘도전과제’쯤으로 생각했었지만 아이를 낳고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사회 구조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딸에게 여자라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수많은 장애물을 넘겨주고 싶지 않다”고 털어놨다.

최근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 집회, 몰카 차별 수사 규탄 집회 등 거리에 나와 성차별 철폐를 호소하는 여성들은 단순히 여성대상 범죄에만 관심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느껴왔던 크고 작은 차별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직장인 이모(31ㆍ여) 씨는 강남역 살인사건 2주기 집회를 찾았다. 남녀 공용화장실을 쓰면서 느꼈던 불안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는 직장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투명인간’취급을 당한다고 호소했다. 이 씨는 “남자 선배들이 어차피 ‘쟤는 결혼하면 회사 그만 둘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며 “직장 내에서 여성들은 곧 사라질 존재들이라는 게 속상했다. 강남역 살인 사건은 극단적인 사례지만, 일상에서 여성은 여전히 약자”라고 꼬집었다. 

지난 26일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불법촬영 편파 수사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지난 주말 서울 청계천에서 있었던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 집회에 참여한 대학생 최수연(26ㆍ여) 씨는 학교에서 겪은 성희롱이 생각나 거리에 나왔다고 했다. 최 씨는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여학생들 옷차림에 대해서 매일 지적하며 불쾌한 성희롱 발언을 한다. 몰래 보는 게 아니라 대놓고 보고 평가한다”며 “여성 대상 몰카가 만연하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안 잡는 것처럼, 여성의 성적 대상화 역시 일상적으로 이뤄져 이를 바로잡기 힘든 수준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직장, 학교, 가정 등에서 성차별을 겪은 여성들의 분노는 언제 어디서든 터질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 운동, 몰카 사건은 그동안 쌓여왔던 여성들의 불만이 터지는 계기가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현재 여성들이 싸우는 대상은 남자가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 구조다. ‘여자라서 당했다’고 호소하는 목소리를 남자들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말고성평등 사회로 나아갈 방법을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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