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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PAS]숲 속의 작은 집ㆍ봇노잼...고독한 방송의 조용한 재미
[헤럴드경제 TAPAS=이유정 기자] 이웃 하나 없는 외딴 숲 속 오두막에서 2년 2개월을 산 남자가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젊은 시인 소로는 1845년에서 1847년까지 미국 매사추세츠 월든 호숫가에서 ‘자발적 고립’을 실험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 ‘월든’은 인간과 삶, 물질문명에 대한 통찰을 담으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기록은 이렇다. “내가 숲으로 간 이유는 인생을 의도한 대로 살기 위해, 오직 삶의 필수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하며 (…) 죽음을 맞이할 때 내가 제대로 살지 않았음을 깨닫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을 살지 않으려 한다.”
 
tvN ‘숲 속의 작은 집’ 포스터

지난달 첫 방송한 tvN 예능 프로그램 ‘숲 속의 작은 집’은 ‘월든’과 닮았다. 자발적 고립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이곳에서 출연진은 피실험자로 불린다. 배우 박신혜, 소지섭이 그 주인공이다. 이틀 내지 사흘 정도의 기간이지만 도시 문명에서 벗어난 단순하고 느린 삶을 실험한다. ‘이게 재밌겠어?’ 싶지만 재밌다.

다만 재미의 성질이 조금 다르다. ‘숲 속의 작은 집’에는 다른 예능에 있는 게 없고, 없는 게 있다.

우선 타인과의 교류가 없다. 즉 출연진들 사이 주고받는 대사가 없다. 흔히 말하는 ‘오디오가 끊기면 방송 사고’라는 예능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 셈이다. 대신 숲 속에 떨어지는 빗소리, 바람소리, 장작 패는 소리, 밥 짓는 소리, 사과 먹는 소리가 말의 부재를 채운다. 일종의 ASMR(심리적 안정이나 쾌감을 유도하는 소리)이다.

소지섭을 반기는 소떼[사진=tvN ‘숲 속의 작은 집’ 캡쳐]

길에 보이는 것은 시야를 가리는 높은 건물이 아닌, 봄 들판에 나와 풀을 씹는 소떼들이다. 소들에게 집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힌 소지섭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한다. “뭔가 친숙한 느낌?”

자연 속은 아니지만 비슷한 고립을 택한 채 인기를 끄는 방송이 또 있다. 유튜버 ‘봇노잼’이다. 한마디 말없이 구독자가 21만여 명이다. 영상에서는 7시간 동안 혼자 공부만 한다. 역시 빗소리나 장작 타는 소리가 말을 대신한다.

실제로 경찰공무원 준비생인 ‘봇노잼’은 순경 시험을 공부 중이다. 시청자들은 이를 실시간으로 보며 채팅을 한다.

공시생 유튜버 ‘봇노잼’. 원래 노잼봇(재미없이 공부만 반복한다는 뉘앙스)이라 하려 했지만 유튜브 설정에서 성과 이름의 순서가 바뀌어 봇노잼이 됐다는 일화가 있다[사진=유튜브 캡쳐]

‘숲 속의 작은 집’도 ‘봇노잼’도 매우 고독한 방송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안엔 조용한 재미가 있다.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며 느끼는 행복 그리고 성취감. 그동안의 예능엔 없던 감각이다.

변화한 라이프스타일에서 재미는 재해석 된다. 광고회사 HS애드의 SNS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관계끊기, 혼자놀기’ 관련 언급량은 2014년부터 급증하는 추세다. 반면 ‘관계맺기, 유대관계’ 관련 언급량은 2009년 대비 큰 변화가 없었다.

사람들은 대신 마음에 위안을 주는 일상의 소리에 주목한다. 유튜브에는 현재 1200만 개가 넘는 ASMR 영상이 업로드돼 있다. 아무 의미 없는 소리가 세상의 어떤 말보다도 편안한 셈이다.

잠시 멈춰 서 지금의 삶과 관계가 과연 나를 위한 것인지 되묻는 사람들. 콘텐츠의 새로운 주인공은 바로 이들 아닐까. 과거 리얼 버라이어티의 왁자지껄함은 음소거됐고, 보다 진실된 삶을 추구하는 개인이 등장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까진 못되더라도 우린 지금 나름의 월든을 원하고 있다.



kul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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