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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탐색]미투 막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물 건너가나
-“역고소 등 피해자 위축…표현의 자유도 제약”
-당정 공감대 불구 ‘역효과 우려’ 폐지엔 신중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 정부와 여당이 강간죄의 성립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에 대해선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국민적 요구가 높았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에 대해선 이견을 보이면서 법률 폐지가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당정은 지난 10일 국회에서 성희롱ㆍ성폭력 근절대책 관련 당정 간담회를 열어 ‘비동의 간음죄’ 신설을 전향적으로 검토하는 것에만 공감대를 이뤘다. 비동의 간음죄란 상대방의 동의없이 성행위를 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가해자의 폭행이나 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만 강간죄를 인정하는 현재 범죄 성립 요건을 낮춰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폐지에 대해선 “이 법안을 폐지할 경우 반대로 가해자가 성폭력 내용에 대해 퍼뜨리면 이를 제재할 방안이 사라지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법무부는 오히려 수사지침 아래 위법성 조각사유를 적용하기로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목소리는 미투 운동이 커지면서 함께 확산됐다. 미투에 동참한 성폭력 피해자들이 오히려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로 역고소를 당하는 경우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또한 규정 존재만으로 피해자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켜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앞서 현직 변호사, 대학교수 등 330명의 법률가들도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존재는 피해자들이 성폭력 등의 피해 사실을 알린 것 자체만으로 오히려 가해자로부터 명예훼손으로 역고소 당해 수사 대상자가 될 수 있는 위험에 놓이게 하고 실제로도 그러한 위협이 발생하고 있다”며 “사생활 비밀과 무관한 사실을 말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는 사례는 한국 외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유엔 역시 대한민국 정부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며 폐지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 청원 홈페이지에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자는 청원이 수십 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폐지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지 않게 제기된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폐지해 성폭력 피해자를 역고소 등 2차 피해로부터 보호할 수 있지만 반대로 피해자를 보호하는 장치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누군가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폭로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지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이같은 논리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입법처는 “인격권의 핵심을 이루는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공연한 적시로 기본권을 침해할 위험성은 인정된다는 점, 미국에서의 징벌적 손해배상과 같이 형벌에 대한 대체재로 기능할 수 있는 유효ㆍ적절한 수단이 마땅치 않은 우리나라의 법 현실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조항을 폐지할 경우 그 폐단이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신 입법처는 “판례에서는 ‘공인의 공적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안에 관해 진실을 공표한 경우’에 공공의 이익을 폭넓게 인정하는 등으로 위법성 조각사유를 탄력적으로 해석해 왔고, ‘미투’ 사례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해도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항(제310조)으로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는 해석론이 지배적”이라며 “위법성 조각의 ‘가능성’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선 유사한 형법이 있는 일본을 제외하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형사처벌하는 국가는 드물다. 미국에서는 몬타나 주 등 일부 주가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는 규정을 두고는 있으나 실제 기소하는 사례는 거의 없고 대체로 민사상 손해배상 문제로 다루고 있다. 영국은 명예훼손을 원인으로 한 사인 간 결투나 보복 등의 금지 목적으로 명예훼손죄를 도입했으나 표현의 자유 위축 및 피고인의 입증 부족으로 인한 유죄 판결의 부당성 등을 이유로 지난 2010년 선동적 명예훼손죄 및 사인 간 명예훼손죄를 폐지했다.

독일은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그 사람을 비방하거나 그 사람에 대한 세평을 저하시키기에 적당한 사실을 주장 또는 전파한 사람은 이러한 사실이 진실한 것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비방(명예훼손)죄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명예훼손 처벌 조항은 있으나 거의 활용되지 않고 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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