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TAPAS=윤현종 기자] “그 때 제가 마케팅 매니저였고 (딸)아이가 다섯 살인가, 갑자기 출근하는 절 붙잡고 울더라고요, 안 그러던 아이가…갑자기 너무 마음이 아파서 돌아왔어요, 그 날 회사 못 갔죠”
워킹맘의 눈이 촉촉해졌다. 죄책감은 아니다. 부모가 되면 안다. 말로 형용하기 힘든 그 마음을. 그러나 회사 못 간 건 그 날 하루 뿐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잘 해냈다. 이젠 글로벌 회사 핵심 축을 전담한 책임자다. 충분히 자기 몫 해내고 있는 딸은 엄마를 거울로 삼았다.
덴마크 의료기업 콜로플라스트의 배금미 아시아 총괄사장이다.
배금미 콜로플라스트 아시아 총괄사장 |
“일하는 엄마 모습 자체가 롤모델이예요”
직함은 사장이지만 조직원에겐 멘토다. “아이가 6세 정도 되면 새삼 엄마를 알아보고 (출근 못하게) 붙드는 시기가 있어요. 뿌리치기 힘들다고, 오래 같이 못 있어서 죄책감 든다고…” 워킹맘 직원들이 그에게 가장 심각하게 털어놓는 고충. 배 사장은 말한다.
“절대 자책 말라고 얘기해요. 왜냐면 일 하는 엄마 모습이 바로 롤모델이거든요. 아이를 공부하게 하려면 엄마가 책상에 앉은 장면을 자연스레 보여주는 식이죠. 학원보다 훨씬 나았어요” 20여 년 경험서 나온 조언이다. “그렇게 자라면서 중학생 쯤 되면, 아이는 일하는 엄마를 친구에게 자랑하고 다닙니다”
‘CEO는 엄마처럼, 엄마도 CEO처럼’
20년 차 넘긴 워킹맘이 젊은 워킹맘과 상담하는 모습. 엄마랑 딸이 수다 떠는 장면을 떠올릴 찰나, “이런 말 해도 되나 싶은데” 라고 말하는 배 사장.
“전 ‘CEO는 엄마처럼, 엄마도 CEO처럼’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엔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핵심은 배려다.
“모성애랑 비슷해요. 내 아이는 얼굴만 봐도 다 알잖아요. 조직원들 표정 하나도 예사로 안 보거든요. 요즘 어떤 문제가 있나. 행복한가 등등…좀 빨리 읽히죠” 힘든 건 감싼다. 잘못은 훈육한다. CEO도 마찬가지라고 배 사장은 설명한다.
“평가도 그렇지만 커뮤니케이션도 늘 따뜻할 순 없어요. 객관적으로 얘기할 땐 차갑게 알려줄 수도 있어야죠”
덴마크 콜로플라스트 본사 로비에 있는 회사미션 |
청렴ㆍ투명 강조…글로벌 기업 ‘여성 선호’이유
배 사장이 가장 엄격히 보는 건 청렴과 투명성이다. 쉽게 말해, 얼마나 법을 잘 지키며 일하는가다. 여성 특유의 합리성이 도움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한국서 여성 리더십은 남성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공사 구분이 확실한 편이라고 봅니다” 소위 안 좋은 의미의 ‘한국적 조직문화’를 잘 아는 글로벌 기업은 그래서 여성 리더를 선호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한다. 배 사장의 말이다.
“한 5년 전만 해도 여성은 한국서 CEO하기 어렵다는 게 글로벌 기업들 인식이었어요. 남자를 더 선호했죠. 유럽은 더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투명성-청렴성을 강조하다 보니 콕 집어서 ‘여성 CEO’를 채용해 달라는 글로벌 회사가 많아졌어요. 신뢰를 강조하는 의료분아에선 더 그렇죠”
덴마크 표준(?)은 “한 번 믿으면 끝까지 간다”
의료기기 시장서 대표적인 덴마크 회사로 통하는 콜로플라스트는 어떨까. 여성 리더십의 장점이 발휘되고 있을까. 본사 최고 경영진과 배 사장의 관계가 궁금했다.
“예를 들어 중국같은 경우, 한 사람을 믿는 데 3~4년 정도 걸린대요. 그런데 덴마크는 처음부터 사람을 믿어요. 하지만 한 번 신뢰가 깨지면 회복이 안 됩니다”
그는 강조했다. “운영과 관련한 부분은 본사에서 콜로플라스트 코리아의 방향을 대부분 신뢰해 왔습니다”
2015년 레드닷 디자인어워드 ‘Red Dot:Best of the Best’를 수상한 콜로플라스트의 도뇨관 |
능력으로 인정 받은 ‘뒤늦은’ 잠재력
그가 신임받는 이유는 또 있었다. 회사 경영에선 빠질 수 없는, 실적이다.
2014년 배 사장 부임 후 콜로플라스트 코리아는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매년 30%씩 성장했다. 평창서 열린 이번 패럴림픽 땐 제품 우수성을 인정받아 공식 도핑테스트를 콜로플라스트 제품으로 진행했다. 그의 공이다. 이 모든게, 그가 단기간에 아시아 전체를 담당하는 자리까지 오른 배경이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기 능력을 늦게 발견했다고 한다.
“나도 이런걸 할 수 있겠다 라고 느낀게 나이 마흔 넘어서예요. 그 전엔 계속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했는데…막상 해보니까 정말 잘 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리고 뜻밖의 말을 꺼낸다. “그런데…지금껏 옆에서 ‘넌 할 수 있을거야, 잘 할거야’라고 나를 북돋는 사람이, 직장서도 별로 없었지만, 가족 중에서도 별로 없었어요”
롤모델의 조언 “북돋아야 합니다”
일종의 ‘동기부여’가 되기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혼자였기 때문이다. 나도 잘 할 수 있단 확신과 자신감을 ‘스스로’ 얻어야 했다. 힘들었다. 그가 외부 강연 등을 자청해 젊은 여성을 만나고 다니는 이유다.
“젊은 분들한테 물어봐요. 10년 뒤 조직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 같냐고. 남성분은 50%이상이 CEO라고 말해요. 하지만 여성분들은 그렇게 얘기하는 사례가 드물죠. ‘여성=겸손’을 당연시 한 한국 교육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누군가 옆에서 여성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분위기가 굉장히 약한것 같아요”
물 밑에 잠든 능력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남성명사) Boys 대신 Girls, be ambitious라고 말하고 싶어요. 좀 더 높은 쪽으로, 좀 더 야망을 가져도 됩니다”
때론 아이 생각에 눈물짓고,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아 고민도 겪었던, 워킹맘 ‘롤모델’의 마지막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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