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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리멤버.U]쿠데타도 혁명도, 민주주의도 인권도 없었다…10시간 ‘유신로드’
[헤럴드경제 TAPAS=윤현종ㆍ신동윤 기자]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의 아버지’ vs ‘민주주의 유린과 인권 탄압을 일삼은 종신집권자’



대한민국 현대사를 돌아봤을 때 평가에 있어 가장 큰 논란에 휩싸인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단연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는다.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탈취했지만, 뒤이어 치러진 국민들의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박 전 대통령. 18년에 걸친 철권통치를 통해 종신집권을 꿈꿨고 반대에겐 처절한 응징을 가했지만, 그 기간동안 대한민국의 경제는 눈부신 발전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마냥 좋은분으로도, 그렇다고 나쁜놈으로도 보기도 힘든 ‘문제적 인물’임에 분명하다.

불과 한 해 전 탄핵을 통해 쫓겨난 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 논란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복잡한 심경과 연결되는게 사실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랑이 그 분의 따님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한 몫을 했다. 그리고 그분에 대한 분노가 그분처럼 민주주의의 원리를 소중하게 생각치 않았던 따님에 대한 실망감과 연결돼 시민의 손으로 권력을 다시 거둬들이는 요인이 됐다고도 볼 수 있다.

TAPAS는 10시간에 걸쳐 서울 곳곳에 위치한 박 전 대통령의 흔적을 돌아보는 코스를 짰다. 그 속에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각자의 평가 기준을 세우는 것은 물론,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박정희 대통령 가옥(서울 중구 다산로36가길 25)

서울 중구 신당동에 위치한 박정희 대통령 가옥 외관의 모습. 신동윤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
 
서울 중구 신당동에 위치한 박정희 대통령 가옥 내 5ㆍ16 쿠데타를 모의한 장소의 모습. 신동윤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

18년 박정희 철권 통치의 첫 시작이 된 곳. 5ㆍ16 군사정변을 계획한 곳이 바로 이곳 신당동 박정희 전 대통령 가옥이다. 박 전 대통령은 제7사단장이던 1958년 5월부터 국가재건최고희의 의장 공관으로 이주하는 1961년 8월까지 3년간 가족과 함께 이 집에 살았다.

서울 중구 신당동에 위치한 박정희 대통령 가옥 응접실의 모습. 신동윤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

서울 중구 신당동에 위치한 박정희 대통령 가옥 마당의 모습. 신동윤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

“박정희 대통령은 1961년 이곳에서 우리나라 현대사의 큰 전환점이 된 5ㆍ16을 계획하였다.” 이 집의 역사를 설명하는 문구엔 ‘쿠데타’란 설명도, ‘혁명’이란 단어도 빠져있다. (왜 말을 못하니!)

박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마음에 정년퇴직 후 가옥 설명 봉사를 하고 있다는 할아버지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역사적 의미에 대해 자신만의 시각을 정리하는 것도 유신로드 투어객으로서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재미 아닐까?


   #신당동 떡볶이 타운(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다산로35길 5)

대한민국에서 즉석떡볶이로 가장 유명한 곳을 말한다면 단연 신당동 떡볶이 타운을 꼽을 수 있다. 신동윤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

신당동하면 떠오르는 즉석떡볶이도 박정희 정부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

1970년대엔 통일벼가 재배되며 값싼 정부미가 넘쳐난데다, 박정희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으로 인해 밀가루를 섞은 가래떡이 떡볶이용 가래떡으로 싸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고추장 떡볶이가 국민 간식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1970년대 말 프로판가스가 보급되며 가스불에 직접 끓여먹는 즉석떡볶이가 등장했다고.


   #옛 궁정동 안가 터(서울 종로구 궁정동 55-3)

서울 종로구 궁정동에 위치한 무궁화동산의 모습. 이 곳은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중앙정보부 안가가 있던 장소다. 신동윤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

청와대 바로 옆에는 아주 작은 공원이 하나있다. 이름은 바로 ‘무궁화동산’이다. 그냥 이렇게만 봤을 때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작은 공원같지만, 알고보면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이곳은 바로 18년 박정희 철권통치가 막을 내렸던 ‘궁정동 옛 중앙정보부 안가’가 위치했던 장소다. 이곳에서 열렸던 술자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을 맞고 사망했다.

지금은 그 집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안가를 헐고 공원으로 조성했기 때문. 집이 위치했던 자리엔 우물 모양의 조형물만이 남아 독재 권력의 허무한 끝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서 TAPAS 기자는 박 전 대통령의 취향(?)이었다는 가수 심수봉의 노래를 하나 틀어서 들어보며 당시의 장면을 상상해봤다.(여러분도 각자의 방법으로 회상해보시길)

사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은 따님 대통령 시대와도 매우 관련성이 큰 민주주의 성지다. 2017년 촛불혁명 당시 시민들이 청와대와 가장 가까이 행진할 수 있었던 공간이 바로 이곳이다. 당시 행진이 이어졌던 이곳 청운효자동주민센터에서부터 경복궁역까지 약 20분간 도보로 걸어가며 민주주의의 역사를 되새기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덤으로 근처 통인시장에 들르면 기름떡볶이, 허파전, 닭강정같은 맛있는 간식거리 등도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다는 점.


   #전태일 다리(서울 종로구 종로5가)

평화시장 앞에 위치한 전태일 다리의 모습. 윤현종 기자/factism@heraldcorp.com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 18년간 대한민국의 경제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이 같은 밝은 빛 뒤엔 온 힘을 다해 스스로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했던 노동자들의 피, 땀, 눈물이 있었다. 동대문 평화시장 의류ㆍ봉제공장 직원들도 그들 중 하나였다. 일주일 가운데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소처럼 일만 했던 그들의 사이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도 끼어있었다. ‘바보회’를 조직해 동료들에게 독학한 ‘근로기준법’을 가르쳤던 그는 1970년 11월 평화시장 앞길로 뛰쳐나와 자기 몸에 불을 붙이고 온 힘을 다해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하라.”

그랬던 그는 지금 평화시장 앞 전태일다리에 동상으로 남아 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수출 드라이브를 통해 선진국을 따라잡아가던 박정희 시대. 전태일 열사를 바라보며 우리는 당시 시대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여유를 얻을 수 있는게 아닐까.


   #남산 인권의 길

남산 자락에 위치한 옛 중앙정보부 건물들은 현재 서울유스호스텔,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신동윤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
남산 자락에 위치한 옛 중앙정보부 건물들은 현재 서울유스호스텔,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신동윤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

봄날 남산을 따라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 따가운 봄볕에 한 줄기 땀이 등 뒤를 흐를 땐 시원하게 느껴지는 바람을 맞으며 걷는 남산길은 겉보기엔 평안하기 그지 없다. TAPAS 기자와 함께 이곳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도 느긋함과 편안함의 중간 그 어디를 가리키는 듯 했다. 하지만, 불과 40여년 전만 해도 이곳은 존재만으로도 서슬 퍼렇고 죽음의 기운이 서려있던 공간이었다. 남산으로 갔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것만으로도 신변안전은 물론이고 목숨까지도 보장할 수 없던 그곳, 바로 옛 중앙정보부 터다.

수많은 정치인, 학생, 언론인 등을 끌고와 고문과 취조를 했던 이곳.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와 학생들의 꿈을 키우는 ‘서울유스호스텔’ 등으로 바뀌었다. 옛 중앙정보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이다.

남산 자락에 위치한 옛 중앙정보부 건물들은 현재 서울유스호스텔,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신동윤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
남산 자락에 위치한 옛 중앙정보부 건물들은 현재 서울유스호스텔,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신동윤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

하지만, 옛 중앙정보부 본관에서 제5별관으로 이어지는 터널에선 당시 인권유린의 현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볼 수 있다. 거리가 약 100m 정도되는 이곳은 ‘소릿길’로 조성됐다. 어두운 터널 안에서 차례로 들리는 철문소리, 타자기소리, 물방울 소리,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캄캄한 터널을 걷다보면 머릿속에 당시 인권을 유린당했던 사람들의 고통을 어렴풋하게나마 떠올려 볼 수 있을 듯 하다.


   #장충체육관

완전히 새로 지어진 현 장충체육관의 모습. [촬영=윤현종 기자]

신당동 옛집에서 ‘쿠데타’를 꿈꿨고, 결국 실행에 옮겼던 박정희. 그는 정확히 11년 4개월 뒤인 1972년 12월, 옛집 옆동네에서 종신 집권자로서의 첫 걸음을 내딪었다. 바로 그곳은 장충체육관. 이곳에서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그는 대한민국 제8대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일명 ‘체육관 선거’에서 그가 받은 득표율은 무려 99.9%.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치다.

장충체육관은 그렇게 1972년부터 1980년까지 대통령 선거를 총 네 차례 지켜봤다. 모두 간접선거. 박 전 대통령이 이곳에서 대통령 당선인으로 가설무대에 오른 건 총 두 번이다.
 
1972년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대통령에 선출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취임식 모습.[출처=대한민국 정부]

운명일까? 군인이었던 박 전 대통령이 종신 대통령으로서 위세를 떨쳤던 이 곳 장충체육관이 1962년 문을 열었을 당시 첫 이름은 ‘육군체육관’이다.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미명으로 포장됐던 유신헌법의 추억을 안고 있는 이곳. 적어도 1980년까지 민주주의가 발붙일 자리는 없었다.


   #장충동 족발골목

장충동 족발골목의 모습. 윤현종 기자/factism@heraldcorp.com

맛 칼럼리스트 황교익 씨의 설명에 따르면 장충동이 족발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였다. 돈까스용 살코기를 일본에 수출하고 난 뒤 남은 돈족이 시장에 싸게 풀렸던 이때, 장충동에 모여살던 실향민들은 중국식 오향장육 제조법을 활용해 돈족을 요리하기 시작했고, 이게 서민들에게 팔리며 인기를 끈 것이 지금의 장충동 족발로 전통이 이어졌다고 한다. 특히, 1960~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끌던 프로레슬링 경기가 장충체육관에서 열릴 때면 길건너에 위치한 족발골목도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하루종일 이어진 강행군에 지친 유신로드 투어객 여러분. 족발에 소주 한 잔 하면서 투어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유신로드 어떻게 하나요

▷준비물 : 운동화, 편한 복장, 교통카드

11:00 지하철 2ㆍ6호선 신당역 4번출구 앞 집합→박정희 대통령 가옥 도보 이동
11:50 박정희 대통령 가옥→신당동 떡볶이 타운 도보 이동
12:00 신당동 떡볶이 타운에서 즉석떡볶이로 점심식사
13:00 지하철 5호선 청구역까지 도보 이동→지하철 탑승→광화문역 하차 및 버스 환승→‘효자동’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 이동
13:30 옛 궁정동 안가 터 ‘무궁화동산’ 관람
14:00 통인시장까지 도보 이동→통인시장 자유시간→도보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까지 이동
15:00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승차→종로3가역에서 지하철 1호선으로 환승→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하차 후 도보 이동
15:30 전태일 다리(버들다리)에서 전태일 동상 관람
16:00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 승차→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 하차→도보로 이동
16:30 남산 ‘인권의 길’ 관람
19:00 도보 이동→‘퇴계로3가.한옥마을.한국의집’ 정류장에서 순환02 버스 탑승→‘동대입구역,장충동’ 정류장에서 하차
19:30 장충체육관 관람
20:00 장충동 족발골목에서 저녁식사
21:00 자유롭게 해산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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