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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봄 노동에 찌든 82년생 김지영에게 전하는 위로
코리아나미술관 개관 15주년 기념전 ‘히든 워커스’

육아ㆍ간병ㆍ가사ㆍ감정노동자, 여성 목소리 전면에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해본 사람은 안다. 쓸고 닦고 털고 말리고…‘살림’이라는게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른바 ‘돌봄’의 노동으로 불리는 여성노동에 대해 관찰하는 전시가 열린다.

코리아나미술관은 개관 15주년을 맞아 기획전 ‘히든 워커스(Hidden Workers)’를 개최한다. 육아, 간병, 가사, 감정노동 등 남성과 노인, 자녀를 뒷바라지 하며 사회시스템이 굴러가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 게릴라 걸스, 조혜정&김숙현, 김정은, 심혜정 등 11명(팀)의 작가가 참여한 전시는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여성의 노동이 사회구조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을 풀어낸다.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 하트포트 워시:닦기/자국/메인터넌스, 실외, 1973년 7월 23일 [사진제공=코리아나미술관]
릴리아나 앙굴로, 유토픽 네그로, 2001, 디지털프린트 [사진제공=코리아나미술관]



여성에게 출산후 갑자기 자신의 ‘직업’으로 다가온 육아는 50년전이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관계없이 당황스러운 일이다. 계약서도 쓴 적 없건만 ‘엄마’라는 이유로 자신에게 할당된 육아와 그에 따른 가사노동은 1939년생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에게도, 1982년생 김지영에게도 똑같은 무게다.

‘히든 워커스’는 여성주의 미술사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는 행위미술가인 유켈리스의 작품으로 시작한다. “결혼하고 임신하다니, 너는 더이상 좋은 아티스트는 못되겠다”는 스승의 말에 의문을 품었던 작가는 실제 출산이후 가정의 ‘유지관리’일에 밀려 예술활동을 도저히 할 수 없던 현실에 맞닥트리게 된다. 작가는 자신이 늘 하던 가사노동이 곧 예술노동이라는 선언문(메인터넌스 예술을 위한 선언문 1969!)을 발표하고 미술관 실내외 바닥을 걸레질 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해 사적 영역에 머물러 있던 여성의 노동을 공적 영역인 미술관에서 가시화한다. 전시장엔 선언문과 퍼포먼스 사진이 걸렸다. 한국에선 최초 공개다. 

조혜정&임숙현,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 2014, 비디오, 컬러, 24분 [사진제공=코리아나미술관]
심혜정, 아라비아인과 낙타, 2013, HD비디오, 컬러, 사운드, 30분, 촬영 박현진 [사진제공=코리아나미술관]


가사ㆍ육아 등 돌봄의 노동이 노동시장에서도 부차적 지위를 획득하게 된데에는 가부장제와 결합한 자본주의도 한 몫을 한다.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남성노동의 영역으로 불리는 공적 노동시장에 진입하자, 돌봄의 노동은 자연스레 저소득 계층과 이민자에게 ‘아웃소싱’된다. 임윤경은 한국과 뉴욕에서 ‘아이돌보미’로 활동하는 여성들을 인터뷰한 ‘너에게 보내는 편지’(2012-14)를 통해 여성의 사회진출의 이면엔 이같은 아웃소싱이 전제임을 꼬집는다.

흥미로운건 이같은 ‘아웃 소싱’이 단순히 갑을관계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로벌시대, 이주노동자에게 주로 전가되는 돌봄의 노동은 선주민과의 관계에서 미묘한 마찰음을 낸다. 심혜정은 ‘아라비아인과 낙타’(2013)을 통해 노인을 돌보는 조선족 도우미와 그를 고용한 고용주의 역학을 고찰한다. 분명 돈을 주고 고용했건만, 자신의 부모를 전적으로 의탁해야하는 상황은 갑을관계의 역전으로 나타난다. ‘애 맡긴 죄인’이라는 말은 모든 돌봄노동에서 유효한 것이다. 차가운 밖에서 잠자기 싫어 주인인 아라비아인의 텐트안으로 한발짝식 들어오다 결국 잠자리가 바뀌고 만다는 ‘아라비아인과 낙타’ 우화처럼 말이다.

갑과 을, 인종, 자본주의, 가부장제 등 모든 권력관계가 2중 3중으로 엮인 여성노동의 현실은 그렇게 복잡하다. 1985년부터 지금까지 고릴라 가면을 쓰고 핑크빛 립스틱을 칠하고 액티비즘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는 ‘게릴라 걸스’의 행동이 지금도 ‘사이다’로 통하는 이유다.

전시는 여성들이 가장 듣기 싫은 말을 지우개로 지우는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로 마무리된다. “청소는 청소기가 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데 뭐가 힘들어서…”라는 글귀를 보자 “그렇게 쉬운일인데 님은 왜 안하세요(하하)”라고 답하면서 지우개를 들게 된다. ‘미투’(me tooㆍ나도 말한다)가 한창인 가운데, 들러볼만한 페미니즘 전시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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