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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리멤버.U]서대문, 정동길, 광화문…당신이 지나간 그 곳에 있다 ‘망국로드’
[헤럴드경제 TAPAS=김상수 기자] 3월 정동길. 고풍스러운 붉은색 벽돌 건물을 배경으로 화보 촬영이 한창이다. 정면을 배경으로, 또 건물 사이를 배경으로 한껏 멋을 낸 모델이 포즈를 취한다. 봄 햇살의 화사한 기운, 화려한 옷, 도도한 표정. 고벽돌 건물의 격조까지 더해 분명 멋진 화보가 나왔으리라. 

같은 건물 앞에서 촬영한 또 하나의 사진이 있다. 110여년 전이다. 두 사진 속 배경 건물은 중명전.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다. 나라를 뺏긴 치욕의 장소다. 

중명전 과거와 현재

고백하자면, 필자 역시 몰랐다. 그들도 몰라서 그렇다. 알았다면, 패션 화보 촬영지로 을사늑약 현장을 택할 리 없다. 무심코 하루에도 수차례 지나갔을 서대문, 광화문, 시청 곳곳엔 ‘망국(亡國)’의 역사가 있다. 점심시간, 주말 언제든 쉽게 가볼 수 있는, 그래서 더 무심했을 장소다. 이 길을 소개한다. 알기 위해서. 게다가 특별하고 의미있는 산책, 데이트 코스로도 손색없다. 역사 순으로 정리했다. 시작은 3호선 독립문역. 1897년이다.

   독립문 서대문 형무소

독립문의 과거와 현재

당시는 대한제국의 명운이 기울던 시기였다. 독립문은 고종 34년 1897년에 세워졌다. 원래 이 자리는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이 있던 자리다. 프랑스 개선문을 본떠 설계는 러시아인 사반틴이, 시공은 한국인 심의석이 담당했다. 

독립문 옆엔 중국사신을 모셨던 영빈관을 개조한 독립관이 있다. 독립협회의 본부 격으로, 현재에도 순국선열 위패 3000여위를 모시고 있다. 천천히 그 앞 방명록을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초등학생, 세계 각국 관광객들이 남긴 소감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세계열강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열망만큼이나 일제 탄압도 극에 달했다. 옛 서대문형무소는 이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이곳은 1908년 일제가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만들었다. 3000여명에 달하는 수용규모에, 독립운동가를 수감, 고문했던 장소다. 

당시 고문 시설이나 사형대 등을 현재까지 보존했다. 0.7평에 불과한 독방이나, 5000여명 옛 독립운동가의 수형사진을 보면 절로 숙연해진다. 사형장에 끌려가며 독립운동가들이 통곡했다는 ‘통곡의 미루나무’도 있다. 


“데이트하러 이곳에 왔어요. 사실 별 생각 없이 왔는데, 막상 보니 너무 짠하더라고요. 친구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어요. 와서 꼭 직접 느껴보라고.”(황은혜ㆍ이대현 커플, 대학교2학년)

옥바라지 골목

독립공원 건너편엔 ‘옥바라지 골목’이 있었다. 수감된 독립운동가의 가족이 머물면서 자연스레 형성된 골목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내 이혜련 여사, 김구 선생 모친 김낙원 여사도 이곳에 머물렀다. 크고 작은 여관과 식당이 즐비한 골목이었지만, 지금은 재개발로 모두 사라졌다. 현재 옥바라지 골목을 보여주는 어떤 안내문조차 없다. 사라진 역사다. 

   정동길 중명전

중명전

1905년 러일전쟁이 일본 쪽으로 기울면서 일본은 급격히 조선 내정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고종으로부터 군대를 빼앗고, 외교권도 가져간다. (‘대한정부는 외국과의 조약 체결 및 중요한 외교안건은 미리 대일본 정부와 상의한다’, 제1차 한일협약) 같은해 11월 17일 저녁. 일본 군대는 중명전에 집결한다. 그리고 일제는 고종의 승인 없이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한다.
 
정동길, 중명전은 이런 공간이다. 정동길은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길이지만, 역사적으론 나라를 잃은 ‘망국’의 길이기도 하다. 정동길엔 중명전 외에도 러시아로 왕이 피신했던 아관파천의 현장 구 러시아공사관, 독립운동 거점이었던 정동교회 등도 있다.

정동길엔 연인들에게 우울한(?) 속설도 하나 있다. 남녀가 이 거리를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소문. 이는 현 시립미술관이 과거 가정법원으로 쓰였던 탓으로 전해진다. 이혼을 앞둔 남녀가 거닐었던 길이었으니. 속설은 믿거나말거나.

   광화문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


나라를 뺏긴 후 시청ㆍ광화문 일대는 일제의 흔적이 넘쳐나게 된다. 시청광장 옆 현 웨스틴조선호텔엔 한 팔각지붕 건물이 있다. 얼핏 호텔의 정원처럼 보이지만, 호텔 소유가 아니다. 조선 왕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원구단의 흔적이다. 

일제는 1914년 원구단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현 조선호텔을 건축했다. 현재는 원구단의 부속건물인 황궁우만 남았다. 원구단 대신 일제는 조선호텔을 세우고 당시 최고급 호텔로 활용했다. 

기념비 과거현재

광화문 사거리 교보빌딩 앞엔 대부분 ‘아 그 건물’이라고 할만한 한 목조 건축물이 있다. 이는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해 세운 기념비다. 세워진 시기는 1902년으로, 사실상 일제에 국권을 뺏겼던 상황. 이 기념비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자존심’과 같았다. 

여기엔 무지개 아치의 ‘만세문’이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신원미상 일본인이 임의로 떼어 개인 대문으로 사용했었다. 광복 후 다시 옮겨와 1979년 복원했다. 

   강북삼성병원 경교장

경교장

일제강점 속에 독립운동도 한층 치열해졌다. 그 상징 격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다. 현 강북삼성병원 안에 있는 경교장이 임시정부 청사로 쓰였다. 찾기가 쉽진 않다. 강북삼성병원 정문을 통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현 모습을 갖추기까지 혹독한 역사를 거쳤다. 광복 후 현 강북삼성병원 전신인 고려병원에서 40년 넘게 병원 시설로 활용했다. 응접실은 병원 원무과로, 서재는 약품창고로 쓰였다. 복원이 된 건 2010년이 돼서다. 이곳은 김구 선생이 안두희에 암살당한 곳으로, 당시 피묻은 의복이나 서거 장소 등도 볼 수 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발걸음을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나의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김구 선생)

   돌아보니

다소 부담스럽더라도 도보를 추천한다. 만보기와 함께 실제 코스를 돌아보니 8037걸음, 5.6km가 기록됐다. 318.2kcal 소모. 비용도 입장료 3000원+버스비면 충분하다. 건강도 챙기고 역사도 배우고 돈도 아끼는 일석삼조. 독립공원, 러시아공사관 등 주요 장소마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무료 와이파이도 쓸 수 있다. 

정동길에 있는 남도식당은 메뉴가 추어탕 하나뿐이다. 중명전 바로 앞에 있으니 오가는 길에 방문하기 좋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무. 정동길 끝에 있는 유림면도 냄비국수로 유명한 식당이다.

☞ 당일치기 망국로드 어떻게 하나요
*준비물: 입장료 3000원, 버스카드, 운동화(도보 추천)
10:00 3호선 독립문역 4번 출구 집합→서대문 독립공원→서대문형무소역사관 관람(입장료 3000원, 2km가량 도보)
11:00 독립문역 버스정류장 승차(790, 705, 7019번)→농협중앙회 정류장 하차(15분가량 소요)
11:15 경향신문 방향 이동→구 러시아공사관→중명전→정동교회→시립미술관(1.8km가량 도보)
12:15 정동길 남도식당에서 점심
13:15 원구단(웨스틴조선호텔)→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광화문)
14:15 광화문 버스정류장 승차(101,160, 270, 271, 273번 등)→서울역사박물관 하차(5분 소요)
14:20 경교장(강북삼성병원) 관람
14:50 해산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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