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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집·방치된 日 고문서 ‘되돌려주기’…그 50년의 기록
1945년 패전 후 일본 정부는 전국 농어촌에 잠들어 있던 고문서를 대량으로 수집해 사회사 자료관을 세우고자 했다. 이 야심찬 계획은 재정난으로 곧 좌절되고 만다. 연구원들은 제각기 흝어지고 빌려온 문서들은 방치됐다, 일본 역사학의 태두 아미노 요시히코는 당시 이 일에 참여했다가 사업이 무산되면서 고등학교 교사로 취직한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고문서 도둑’이 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시 빌려온 고문서들을 되돌려 주는 여정에 나선다. 1967년에 시작된 고문서 반납여행은 무려 18년이 걸렸고, 1998년에야 완료된다. 문서주인들은 당시 1년안에 받기로 한 걸 50년만에 돌려받게 된 셈이다. 그런 사이 수십년간 내버려진 고문서들은 벌레가 먹어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기도 했다. ‘고문서 반납여행’(글항아리)은 50년에 걸친 이 국가적 실패의 사업과 아미노의 고문서 반납의 여정과 소회를 담고 있다.


반납여행은 한반도와 인연이 깊은 쓰시마 섬의 다이묘였던 소가문의 고문서를 돌려주는 여정으로 시작된다. 저자는 심한 질책을 들을 거라며 단단히 각오하고 담당 연구관을 찾아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여태껏 문서를 가져갔다가 되돌려주러 온 사람은 처음이라며 미담이라고 칭찬을 받는다. 이 말에 힘을 얻은 저자는 문서를 반납하지 않는 것의 무서움을 깨닫게 된다. 문서를 빌려준 이나 반납하러 간 저자나 피차 머리숱이 적어져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에피소드는 쓴 웃음을 짓게 한다.

저자는 이 여정에서 자신의 연구에 대해 반성하고 방향을 바꾸거나 새로운 시각을 얻는 등 실증적 사료와 현장의 중요성을 깨달아가기도 한다. 가령 농업과 토지 소유의 진전이야말로 사회의 진보라 여겼던 그의 상식은 근본부터 흔들린다. 농업만을 가지고는 역사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며 어민, 산민, 직공들의 존재를 주목해야 한다는, 특히 피지배층에 주목한 새로운 역사관을 갖게 된다. 이른바 ‘아미노 사학’이다. 고문서를 어떻게 다루고 연구해왔는지 아미노의 반성적 기록은 한국에도 시사점을 준다. 

이윤미 기자/me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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