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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로시간 단축 여파] 엎친 최저임금에 덮친 근로시간단축 中企 비명
-중소업계, “지금도 인력 구하기 힘든데 인건비 부담까지... 죽을 맛”
-주물, 용접 등 3D업계는 “숙련된 인력 구인난 8월 후 심각할 것” 예견
-업계, “성수기 탄력근로제 같은 대안 절실하다”

[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지금도 사람을 못 구해서 난리인데 근로시간까지 줄이면 납기일이나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확정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대기업에 주물제품을 납품하는 1차 협력사 대표인 A씨는 28일 긴 한숨을 내쉬며 이같이 말했다.

중소기업인들은 한국의 근로시간이 세계 최장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근로시간 단축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너무 급격한 변화가 문제라고 불만을 토해내고 있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부담을 떠안은데 이어 나온 조치라는 것. “엎친 최저임금에 덮친 근로시간단축”이라며 실소하는 기업인도 적지 않다.

홍영표 국회 환노위원장(왼쪽두번째)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간사(왼쪽부터), 임이자 자유한국당 간사, 김삼화 바른미래당 간사가 근로시간 단축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법안 처리에 합의한 뒤 손을 맞잡고 있다.

가장 큰 문제로 기업인들은 인력난을 호소 중이다.

A씨는 “최저임금 인상보다 그 여파가 크다. 라인이 24시간 돌아가는 상황에서 3부제를 편성하고 8시간으로 근로시간을 맞춰야 하니 사람을 더 써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 공고를 내도 오겠다는 내국인이 없어 외국인 근로자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나마도 채용한도 쿼터에 걸려서 더 이상 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기업하는 입장에선 납기일을 맞추는 게 중요한데, 이를 지키지 못할까봐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뿌리산업이자 3D업종으로 분류되는 주물, 용접 등의 분야는 더 큰 어려움을 호소한다. 용접업체 대표인 B씨는 “현재 자동차, 조선업종 시황이 워낙 좋지 않다. 올 가을부턴 조선이 조금 괜찮아진다고 하는데, 일은 급하고 주 52시간으로 시간은 단축돼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B씨는 이어 “숙련된 인력이 필요하지만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법률안이 시행되는 8월이 지나면 제조업 분야에서 본격적인 후유증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근로시간 ‘주 52시간’ 단축에 따른 부족인력은 26만6000명에 달한다. 또 현재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기업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연간 12조1000억원이다. 특히, 근로자 300인 미만 중소사업장은 전체 추가 비용 가운데 70%인 약 8조6000억원을 떠안는다.

경제단체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국회 입법이 대법원 판결 전에 이뤄져 산업 현장의 큰 혼란을 막았다는 점은 다행”이라면서도 “영세기업들의 구조적, 만성적 인력난이 2023년까지 다 해소될 리는 만무하다”고 강조했다. 중기중앙회는 또 “정부는 현장의 인력 실태를 지속 점검하고, 인력공급 대책·설비투자 자금 등 세심한 지원책을 마련해주기 바란다. 아울러 국회는 추후 예정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노동제도 유연화에 대한 논의도 성실히 진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근로시간 단축의 연착륙을 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 유연근무제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 불가피한 연장근로가 필요한 경우 예외조항을 신설하는 등 보완입법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중견기업연합회는 “중견기업계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기 위한 소통이 부족했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약자보호라는 도덕적, 당위적 명분만을 앞세워 무차별적이고 급격하게 기업 경영환경을 위축시킨다면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의 동반성장 기반마저 잠식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근로시간 단축으로 정부가 원하는 방향대로 추가고용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중기중앙회가 지난해 6월 중소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대응에 대해 묻자 신규 인력충원(16.4%), 설비투자 확대(16%)가 기존 근로자 생산성 향상 도모(42.7%)에 이어 2, 3위를 기록했다.

생산설비를 외국으로 이전할 것이란 예상도 적지 않다.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 대표 C씨는 “유예기간이 있지만 그때까지 견딜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주변에서는 해외로 라인을 옮기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업종의 특성에 따라 성수기 때는 일손이 부족하니 노사 합의를 거쳐 특근을 해서 물량을 맞추고, 비수기 때는 자율적으로 단축근로를 할 수 있는 탄력근로제 같은 대안이라도 서둘러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jin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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