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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섹시라는 말 딱 한번만 쓴다면…드라마 ‘돈꽃’에…
차분한 복수, 완성때마다
배경음악 긴장감 극대화

돈만을 좇는 시대의 민낯
파괴적 인간성 적나라하게

장혁 포커페이스 연기 압권
깊은 내공 “역시 이미숙”

지난 3일 종영한 MBC 주말특별기획 ‘돈꽃’은 재벌가의 장손으로 태어났지만 혼외자라는 이유로 고통 속에 살아야 했던 한 남자 강필주(장혁 분)의 복수를 그린 드라마였다. 출생의 비밀과 불륜, 혼외자, 복수 등 소재면에서는 흥분하고 날뛰고 뒷목 잡고 넘어가는 장면이 대거 등장할 것 같다. 막장의 전형적인 장면 말이다.

하지만 ‘돈꽃’에는 그런 장면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차분하게 화낸다. 복수의 빅픽쳐를 그린 장혁(강필주)은 진중하게 하나하나 복수를 완성해나간다. 그 모습이 너무 슬퍼 처연함까지 자아낸다.


이렇게 된 것은 우선 김희원 PD의 섬세한 연출과 편집덕이다. 이로써 장혁은 연기를 하지 않을 때조차도 연기를 하고 있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재벌의 어두운 뒷모습과 불륜, 정경 유착 등 다소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를 ‘돈꽃’만의 방식으로 매끄럽게 풀어냈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독특한 서사 구조와 매회 예측할 수 없는 전개 역시 완성도를 높였다.

또 하나의 공신은 뒤에 깔리는 음악이다. 차분한 복수를 하나씩 완성해나갈 때마다 음악은 강필주가 ‘나의 길’을 계속 가겠다는 분위기를 알린다. 엠씨 더 맥스(M.C The Max) 이수의 ‘My way’(마이 웨이)가 역주행송으로 등극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돈꽃’은 주말극의 전형적인 틀을 깨며 한국드라마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돈꽃’은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휘몰아치는 폭풍 전개와 반전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마지막회인 24회는 시청률 24%로 자체 최고 시청률(닐슨코리아)을 경신했다.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도 인상적이었다. 돈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돈에 지배당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돈을 좇는 시대의 민낯과 인간성 파괴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시청자들은 강필주의 복수에 울고 웃으며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배우들은 인생연기를 선보였다. 주인공 장혁은 ‘갓장혁’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또 한 편의 인생작을 남겼다. 복수를 위해 민낯을 감춘 포커페이스 강필주 역을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소화했다. 매회 역대급 연기를 선보이며 시청자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특유의 섹시함을 발산하며 여심 공략에도 성공했다.

여주인공 박세영은 ‘돈꽃’을 통해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돈꽃’ 유일의 순수 캐릭터 나모현 역을 섬세하게 그려, 호평을 받았다. 중반부 이후부터는 흑화 캐릭터로의 변신을 꾀해, 극적 재미를 고조시켰다.

이미숙은 관록의 대배우 임을 입증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욕망의 화신’ 정말란 역에 완벽하게 빙의했다. 독보적인 카리스마와 압도적인 열연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청하그룹 명예회장 장국환 역의 원로배우 이순재는 묵직한 존재감으로 ‘돈꽃’을 든든하게 이끌었다. 돈과 핏줄밖에 모르는 인간이었다. 혼외자 아들을 죽이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장승조는 꽃미남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안방극장 대세로 급부상했다.

마지막회는 강필주의 장대한 복수극이 마무리되고, 욕망의 청아가(家)가 침몰하는 과정이 그려졌다.

하지만 강필주의 복수는 단순히 일그러진 욕망에 대한 단죄로만 끝나지 않았다. 자본신(神)만을 좇으며 쌓았던 게 모래성임을 알려주었다. ‘돈꽃’은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며 시청자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명작이 됐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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