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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희의 현장에서] 참사 막은 ‘기본’…밀양과 달랐던 세브란스
‘192 vs 0.’ 밀양 세종병원과 서울 세브란스병원의 인명피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러나 실제 그 차이는 아주 기본적인 데에 있었다. 소방 시스템을 설치하고 평소 소방 훈련을 실시하는 것. 화재 때마다 전문가들이 강조해온 방법들이었다.

최근 계속된 대형 화재 참사에 ‘대한민국에서 화재가 나면 모두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불안에 휩싸여 있던 국민들에게 안도감을 심어주기도 했다.

지난 3일 오전 7시 56분 세브란스 병원 본관 3층 게이트 천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병원 측은 즉시 119에 신고했고 소방서는 8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화재 발생 시 ‘골든타임’은 5분이다. 초기 대응을 어떻게 하는지 매우 중요하다. 반면 밀양 세종병원은 직원들이 자체 진화 등으로 우왕좌왕하면서 7분 뒤인 7시 32분에야 신고를 했다.

세브란스 병원은 소방시스템이 모두 정상 작동됐다. 세브란스 병원의 스프링클러가 바로 작동돼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았고, 방화셔터 역시 화염과 연기가 다른 공간으로 퍼지는 걸 막았다. 유독성 연기가 순식간에 전체 건물로 번졌던 세종병원 화재와는 달랐다.

직원들의 행동도 차이가 컸다. 세브란스의 본관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 등 직원 500여 명은 일사불란하게 환자와 보호자 400여 명을 옥상이나 다른 병동으로 대피시켰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는 소방관과 직원들이 업어서 이동시켰다. 실외로 대피한 환자들에게는 담요도 지급해 2차 피해를 막았다. 세종병원 환자들이 대피 안내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연기가 가득한 계단으로 이동하다가 숨진 것과 대비된다.

화재 대응에 있어서 두 병원의 가장 큰 차이는 평소에 소방 훈련을 받았는지 여부다. 세브란스 병원은 매년 인근 소방서와 연계한 자체 소방훈련을 2회 의무 실시해오고 있다. 각 부서별 소방훈련도 최소 1회 실시하고 있다. 화재 직후 안내방송을 해 환자와 보호자들이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게 도왔다. 밀양 세종병원은 자체 소방훈련만 연 1회 실시했고 대피 안내방송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 세브란스 병원 화재는 기본을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명확하게 보여줬다.

밀양 세종병원, 제천 스포츠 센터, 종로 여관 화재 등 최근 잇따른 화재 사고에 시민들은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전문가들이 소방시스템을 잘 설치하고 평소 화재 시 대피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불이 나면 다 소용없을 것이라는 회의감도 존재했다. 하지만 안전불감증은 ‘과연 막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으로부터도 생긴다. 어차피 안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 속에선 스프링클러, 소화기 등을 설치하는 것은 돈과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덕분에 건물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방화문 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화재 대피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으니 소방 훈련 때에도 대충 시간만 때우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다.

아쉬움은 남는다. 공교롭게도 신촌 세브란스 병원은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유명병원이고 밀양 세종병원은 지방의 중소병원이다. 가뜩이나 우리나라 환자들은 1차 병원 의존도가 높고 그 중에서도 서울에 있는 병원을 선호한다. 그만큼 지방 병원은 외면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번 화재 대응을 보고 “역시 병원은 서울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수도권 병원 과밀화는 전국의 모든 환자들에게 좋지 않다.

사람들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에서 목숨이 걸린 안전 인프라 확충에 예산을 운운하며 망설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방의 병원들도 수도권 대형 병원으로 빠져나가는 환자들을 부럽게 바라만 볼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소방 훈련을 실시하고 안전시설을 확보해야 한다.

일본의 하가 시게루 릿쿄대학교 현대심리학부 교수는 ‘안전의식 혁명’에서 사람들이 안전불감증에 빠지는 이유는 경제적 손해와 이득 때문만이 아니라, 진화심리학적 적응이나 신경생리학적 작용도 관련된다고 주장했다. 인재(人災)를 없애려면 안전 관련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늘 이렇게 살아왔으니 별일 없을 거야’ 혹은 ‘그렇게 한다고 뭐 달라지겠어’하는 마음가짐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세브란스 병원 화재로 ‘이렇게 하면 달라진다’는 작은 가능성을 보게 됐다. 대한민국에서 불이 나면 무조건 대형참사로 이어진다는 좌절감에서 벗어나 지금부터라도 미리 화재에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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