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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투를 넘어서②]‘말해봤자 손해’ 0.6%만 문제제기…피해자 보호제도 시급

-성희롱 피해자 중 정식 문제제기 0.6%
-사내 조사 과정에서 2차 피해 받기도
-“피해자 공감 사회적 분위기 뒷받침돼야”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직장 내 성 관련 범죄는 계속해서 늘고 있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회사 내 시스템은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형식적인 내부 조사가 이뤄질 뿐만 아니라 오히려 2차 피해까지 입히는 경우도 많다.

2일 여성가족부의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7844명 중 0.6%인 47명만이 직장 내 기구를 통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성희롱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여성가족부의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7844명) 중 0.6%인 47명만이 직장 내 기구를 통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처리했다. 사진 기사 내용 무관 [사진=123RF]

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근로자참여및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30인 이상 사업장은 ‘노사협의회’를 구성해 고충처리 담당자를 지정하고 사내 성희롱 문제를 조사 및 처리하게 돼있다. 문제는 사내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이다.

법에 따르면 회사가 성희롱 등 사내 고충을 접수하면 담당자가 문제를 조사한 뒤 7일 내 그 결과를 통보하게 돼있다. 그러나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가해자와 피해자를 조사하고 어떻게 해결할지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고충처리 담당자 역시 사내 직원이다. 회사 차원에 문제를 축소시키라는 지시가 있을 때 거부하기 어려운 위치다.

사내 조사 과정에서 사건이 알려져 2차 피해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직장인 김모(32) 씨는 사내 성추행을 겪어 인사팀에 비밀리에 조사를 해달라고 신신당부 했지만 며칠 뒤 김 씨의 경험담이 일파만파로 퍼져 있었다. 김 씨는 “성희롱 전문가도 아니고 피해자 보호 의식 자체가 없는 사람에게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피해자 입장에서 사내 고충처리 담당자가 사측에 가깝다고 우려할 수 있으나 실제로 이 같은 일이 있었는지 확인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노선이 운동가는 “사내 제도가 있는 피해자들이 사내 창구를 통해 문제제기를 한 후 그 안에서 해결되기 어렵다는 느낌을 갖고 다시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내고충처리 위원회에서 조사에 나섰을 때 회사에서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2차 피해는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사내 시스템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조직 문화가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노 운동가는 “사람들이 보통 뉴스에 나오는 성범죄에는 공분하면서도 정작 조직 내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까봐 두려워해 외면하는 게 현실”이라며 “평소에도 피해자에게 수치심이나 모욕감을 줄 수 있는 발언을 했는지 되돌아 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재련 변호사(전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는 피해자가 회사 내ㆍ외부의 도움을 받으려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변호사는 “교통사고 피해자에게는 ‘뭔가가 문제가 있겠지’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런데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왜 지금 와서?’, ‘피해자도 문제’ 등 의심을 갖고 쳐다본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까지 있는 엄마가 성추행 피해자라고 전 국민에게 얼굴을 보이고 말해야만 나라가 움직이는 것도 문제”라며 “일시적인 공분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집요하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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