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군사정권 때 그많던 테니스장 어디로…
박정희 정부, 아파트 의무설치
민주화 이후 주차장에 밀려나
최근 강남 중심 설치 증가세로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최근 인기리에 상영중인 영화 <1987>에서는 박처원 치안감(김윤석 분)이 고(故) 박종철 열사 화장 허가를 기다리며 태연히 테니스를 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 군사정권 시절 살벌한 고문이 자행되던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는 영화에서처럼 테니스장이 있었다.

정현이 ‘호주오픈 4강 신화’의 쾌거를 달성하면서 테니스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달아오르고 있지만, 테니스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테니스를 즐기는 인구 자체가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테니스장 수도 급격히 줄었다. 학교, 관공서, 아파트마다 하나씩은 있던 테니스장이 이제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1987>에서처럼 1970~80년대는 전국 곳곳에 테니스장이 들어서던 시절이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났다. 특히 군사정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보급했다.

박정희 정부는 1976년 주택건설촉진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500가구 이상의 아파트 단지에는 의무적으로 정구장, 즉 테니스장을 설치해야 했다. 지금도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 테니스장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주민의 여가ㆍ문화생활 고양을 위해 선진 운동시설도 갖추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왜 하필 베드민턴도 농구도 아닌 테니스였을까? 한국의 테니스 보급 역사를 보면 1800년대 후반 개화기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개화사상을 가진 조선인들이 시작이다. 최초로 테니스를 친 조선인은 김옥균이라 전해진다. 그러나 조선인 일반에까지 퍼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양반은 격에 맞지 않다며 운동 자체를 천대했고, 평민은 경제적 여유가 없어 값비싼 테니스 장비를 부담할 수 없었다.

일제감정기 들어서는 일본이 테니스를 보급시키고 나섰다. 일본은 학교, 군대 등을 통해 테니스를 보급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는데, 일본군에서 복무했던 조선인 장교들에게 두루 전파됐다. 이 조선인 장교들은 해방 후 군사정변을 통해 실권을 장악했고, 우리 군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지금도 군부대에 테니스장이 많은 이유, 군 고위 장교들이 테니스병을 부리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역대 대통령 가운데 군인출신은 예외없이 열렬한 테니스 애호가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영애시절 테니스를 배우고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 많던 테니스장을 현재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파트 단지에서는 주차공간 확보의 필요성 때문에 수영장, 헬스장과 같은 실내 스포츠장으로 전환했고, 여가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즐기는 사람도 줄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새로 짓는 아파트단지는 주차장이 모두 지하화되면서 강남권을 중심으로 테니스장이 설치되는 곳들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 2000년 이후 지어진 서울 반포 일대 아파트에도 테니스장이 다수 설치돼 주민들간 동호회 활동이 활발하다.

paq@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