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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뜨거웠던 역사' 영화 1987, 현실과 허구 사이
대검 이홍규 과장이 단초 제공

은폐 메시지 전달 김태리는 허구
선데이서울 아닌 휴지에 적어


고(故)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사진>이 흥행가도를 달리면서 영화에 등장하는 실제 인물도 재조명 받고 있다. 극화를 위해 일부 다르게 묘사한 부분도 있지만, 사실관계를 깐깐하게 따지는 법조계에서도 고증이 잘 된 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8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영화 1987은 전날 기준 전국 408만7287 명의 관객을 기록했다. 전국에 걸린 스크린 수도 2311개에 달한다. 지난달 28일에는 박상기 법무장관과 김부겸 행안부 장관, 문무일 검찰총장, 이철성 경찰청장이 함께 이 영화를 관람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는 1987년 서울대생 박종철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던 중 사망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초반부 이야기를 주도하는 인물은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이었던 최환(75·사법시험 6회) 검사다. 배우 하정우 씨가 최 검사 역을 맡았다. 당시 경찰은 최 검사를 찾아와 박종철 시신을 화장할 수 있도록 지휘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최 검사는 부검을 고집하며 버틴다. 청와대의 외압에도 불구하고 최 검사가 원칙을 고수해 한양대 부속병원에서 의사 황적준의 집도 하에 부검을 한 사실은 실제와 일치한다. 


하지만 영화 속 최 검사가 이 일로 사표를 내고 변호사로 개업하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최 검사는 이듬해 서울남부지검 차장검사로 발령났고, 대검 공안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지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변호사 개업을 한 시기는 부산고검장을 역임한 이후인 1999년으로, 12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였다. 김대중 정부에서 노근리사건 정부조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2007년에는 율곡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 검사가 박종철 사망 사실을 언론에 유출하는 과정도 영화적 장치가 들어가 있다.

영화에서는 최 검사가 박종철 시신 부검을 강행하기가 어려워지자 이홍규(81) 당시 대검 공안4과장에게 내용을 흘리고, 언론에 기사가 나오도록 유도한 것처럼 묘사됐다. 하지만 이 과장이 누구에게 언질을 받았다고 언급한 적은 없다. 당시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로 박종철 사망 비보를 처음으로 전한 신성호(62) 성균관대 신방과 교수는 기사 단초를 제공한 이가 이 과장이라는 점을 25년이 지난 뒤인 2012년에서야 자신의 논문을 통해 공개했다.

영화에서는 최 검사의 지휘로 이뤄진 부검에 참여한 평검사는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낸 안상수(72) 검사다. 안 검사는 이후 고문치사 의혹 진상 규명을 위한 수사팀 검사로도 활동했다.

하지만,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 등 2명의 경찰만을 사법처리하며 사건을 은폐, 축소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수사팀 최고참이었던 신창언(76) 부장검사는 검사장으로 승진한 이후 1994년에는 헌법재판관을 지냈고, 막내였던 박상옥(62) 검사도 의정부지검장을 거친 뒤 2015년 대법관에 임명돼 현재 재직 중이다.

사건 책임자 규명이 축소, 은폐됐다는 사실은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동아일보 기자 출신의 이부영(76) 씨가 교도관 한재동 씨와 보안계장 안유 씨의 도움을 받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영화도 이 부분을 상세히 다루고 있지만, 배우 김태리 씨가 연기한 서신 전달자 ‘연희’는 허구의 인물이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김승훈 신부가 받은 서신이 영화에서는 성인잡지 ‘선데이 서울’에 기재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교도소에서 제공되던 휴지에 내용을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1987은 의도적으로 역사와 연관된 배우에게 상반된 역할을 맡겨 주목을 끌기도 한다.

이한열 최루탄 사망사건 항의 집회를 주도했던 배우 우현 씨는 박종철 사건의 유명한 발언인 ‘탁 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를 말하는 강민창 치안본부장 역을 맡았다. 고 문익환 목사의 아들 문성근 씨는 박종철 사건 은폐를 시도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측근 장세동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나온다.

영화 말미에 문익환 목사가 이한열 추모 노제에서 연설대에 올라 목놓아 흐느끼는 장면이 나온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책임자였던 박처원 치안감을 연기한 배우 김윤석 씨는 박종철 열사의 혜광고 2년 후배이기도 하다.

좌영길 기자/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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