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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년기획 2018-반쪽 지방분권…길을 찾다 ④일본] 너무 조용한 市長선거…日지역정치 ‘무관심이 낳은 무기력’
후보 모두 무소속 ‘인물정치’
해 지면 유세차량도 불 꺼져
“누가 돼도 똑같아” 투표 외면
지역정치인 당선되고도 허탈


[히로시마(일본)=최정호ㆍ홍태화 기자] 일본 지역정치 현장엔 소리가 없었다. 정당도 없었다. 춤과 노래는 커녕 후보의 우렁찬 목소리조차 듣기 힘들었다. 축제 혹은 싸움으로 비견되는 우리 선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유자키 히데히코 히로시마 시장은 지난 11월 도심에 있는 시장으로 유세를 나왔다. 주변엔 빨간 배지를 한 지방 정치인이 따랐다. 옷을 맞춰 입은 유세단 사이로 양복을 입은 지사가 있었다. 점잖게 걸었다.

대한민국과 똑같았다. 고등학생과 사진 찍었고, 상인과 악수했다. 그런데 무언가가 빠졌다. 외침이 없었다. 분위기를 띄우려는 관계자도 맞춰주는 지지자도 없었다. 슬그머니 들어와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적폐’라던가, ‘정치보복’이란 구호가 없었다. 행렬을 따르던 사람은 “방해될까봐”라고 선거운동의 기본 자세를 설명했다.

일본 지역정치 현장엔 큰 소리가 없다. 시장선거 유세는 느릿느릿 걸으며 조용히 치른다. 이마저도 오후가 되면 끝이 난다. 사진은 유자키 히데히코 히로시마 시장의 선거운동 모습.

이런 조용한 선거는 당연히 낮은 투표율로 이어진다. 다음날 선거 투표율은 31.09%에 그쳤다. 역대 3번째로 낮은 투표율이다. 통역을 도와준 기타노 유카 씨는 “사실 저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유세 내내 후보자에게서 ‘해내겠다’는 외침 한번 듣지 못했다. 심지어 주먹도 한번 안 흔들었다. 지지자도 그저 웃고, 인사할 뿐이었다. 한국에서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기타노 씨는 “보통 이정도다”며 “태어나서 한국과 같은 집회는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전했다.

조용한 유세 행렬은 속도도 느릿느릿 했다. 한명이라도 더 만나 인사해야겠다는 절박함은 안 보였다. 마실 나온 느낌이다. 지사 주위 관계자에게 말을 거니, 친절하게 답했다. 큰소리가 없으니 목소리를 높여 물을 필요도 없었다. ‘왜 후보를 따라나왔느냐’고 물었다. “남편 동창이어서”라고 답했다. 그게 당연하단 식이다. 정치적 이념을 묻자 “그건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현지 지역지는 “각 지역을 유세할 때에는 그 지역에 시장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동행했다”고 썼다. 많게 잡아야 50명 될까 하는 규모였다. 일본에선 많은 편이란다. 이마저도 오후가 되자 끝이 났다. 해가 질 무렵 거리는 조용했다. 지나가던 유세차량조차 불이 꺼진 상태로 달리고 있었다. 들릴듯 말듯한 크기로 선거를 알렸다. 이를 마지막으로 선거날이 밝을 때까지 거리에선 ‘한 표’를 호소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야간 유세를 해 소음 공해로까지 지적되는 대한민국과는 달랐다.

선거 당일에도 상황은 같았다. 골목마다 설치된 홍보판 정도가 선거임을 알렸다. 나무로 만들어진 판자엔 두 후보 얼굴이 찍힌 선전지 두 개가 붙었다. 홍보물을 보호하기 위한 비닐은 없었다. 그래도 깨끗했다. 국민성이 뛰어나거나, 관심이 없던가 둘 중 하나다. 두 후보 모두 초록색을 사용했다. 언뜻 봐선 누가 누군지 알기 어려웠다.

두 후보는 모두 무소속으로 나왔다. 이념이나 정당보다는 지엽적 친밀관계가 더 중요했다.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일본 지역 정치는 폐쇄적이다”며 “인물이 먼저고, 그다음이 당이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인물이 나오면 여러 당이 자처해 지지하는 현상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무소속으로 나왔지만, 유자키 지사는 자민당, 공명당, 민진당 3당이 공통으로 지지했다.

이를 반증하듯, 일본인은 정치색에 무심했다. 행렬에서 지사와 악수를 한 사토 하루 씨는 “어느 당 소속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옆에 있던 한 행인도 “아베와 같은 당이었나”라고 반문했다. 보수, 진보 구도가 유세판에 없었다. 정책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는 답변이 주로 따라왔다.

정치적 무관심은 일본에서 만성화된 현상이다. 근처 식당에서 만난 30대 회사원은 “누가 돼도 똑같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다선하는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이 흔한 이유기도 하다. 무라카미 아쓰코 공산당 시의원은 “일본인은 전체적으로 개혁보다 안정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승리로 3선을 따낸 유자키 지사가 승리한 요인도 여기에 있다.

경제적 흐름도 맞물렸다. 히로시마 부동산은 최근 수년 간 오름세를 지속했다. 3년 전 산 집이 20%가 올랐다. 100% 고용이란 일본 내 상황도 있었다. ‘청년실업’ 등 내재된 불만이 적다 보니, 정치적 무관심은 더 커졌다. 무라카미 의원은 “자기 이름만 외치다가 당선된 사람도 있다”며 허탈해했다.

정적인 분위기는 행렬 주변 모인 사람들의 연령대와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40대 이상으로 보이는 이들이 주위를 메웠다. 사진을 찍은 고등학생 두 무리가 지나가자 10대와 20대는 보이지 않았다. 젊은이가 정치판에서 사라지자, 진보진영 정치인은 설 자리를 잃었다. 무라카미 의원은 “대한민국 탄핵과정과 촛불집회를 봤다”며 “젊은 세대가 정치에 참여하는 에너지가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어 “아무것도 못하는 제가 스스로 억울하다”며 “한명의 정치인으로 한국 정당정치를 배우고 싶다”고 고백했다.

th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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