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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저임금 후폭풍]하루 11시간…경비원, 휴게시간만 늘었다

-휴게시간 늘려 공식적 근무시간 줄이기 편법
-경비원 “인건비 절약 꼼수”…근로 감독 강화를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올해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아파트 경비원 A씨의 휴게시간은 2시간이 늘었다. A씨의 휴게시간은 아침 1시간, 점심 2시간, 저녁 2시간, 그리고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인 야간 6시간까지 합치면 총 11시간이다. 얼핏 보면 휴게시간이 많은 게 복지가 좋아진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 아파트 건물에는 ‘최저임금이 시간당 7530원으로 전액 지급하면 주민들에게 관리비 부담이 커 관리사무소의 직원 급여와 관련해 입주자 회의를 의결한 결과’라고 쓰여 있다. 올해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관리비 인상을 막기 위한 방법이다. 

아파트에 붙여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경비원 휴게시간 증가 공지문.

올해 최저임금이 작년(6470원)에 비해 16.4% 증가했지만 아파트 경비원들의 월급은 오르기 쉽지 않다.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휴게시간을 인위적으로 늘리는 등 꼼수가 등장하고 있다. 휴게시간을 늘리고 이 시간은 시간당 임금에서 제외시켜 작년과 동일한 월급으로 맞춰주겠다는 의도다.

지난 4일 오후 찾은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도 마찬가지였다. 5년차 경비원 B씨 야간 휴게시간은 4시간에서 올해 갑자기 5시간으로 늘었다. 야간에 더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이냐고 묻자 B씨는 딱 잘라 말했다. “집에서 자야 잔 것 같죠.”

지하 주차장 밑에 마련된 경비원 휴게실에 가보니 나무로 짜여진 침대만 덩그러니 있었다. 이불조차 없었다. 가정용 전기히터만 구석에 놓여있었다. 이곳에서 자는 것은 몸도 불편하지만 마음은 더 불편하다고 경비원들은 입을 모은다. 휴게시간에도 경비원을 찾는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온다. 

아파트 경비원의 휴게실. 이불도 없는 간이 침대가 눈에 띈다.

가장 바쁜 시간인 저녁 시간대에 휴게시간을 몰아주면서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서울 성동구의 다른 아파트 경비원 C씨는 “사람들이 퇴근하는 저녁시간에는 택배나 주차 문제로 민원이 가장 많을 때다. 매일 보는 주민들이 전화로 찾으면 이를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민들이 경비원 휴게시간에 관심이 없다. 연락이 안되면 일을 안 하는 줄 안다. 휴게시간이라도 해서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결국 휴게시간의 증가가 경비원들이 ‘공식적으로’ 일하는 시간을 줄여 임금 향상을 막고 복지 향상에도 도움을 주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는 노동자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방안이 아닌 인건비 절약을 위해 강구된 인위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정해진 근로계약을 지킬 수 있도록 정부의 노동 감독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안성식 노원노동복지센터 센터장은 “휴게시간에 일을 하는 경우는 근로계약 위반이지만 일자리가 아쉬운 경비원들은 이를 고발하기란 쉽지 않다”며 “실질적인 근로 감독과 더불어 휴게시간을 온전히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현장에 배포되는 등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경비원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근무형태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안 센터장은 “현재 24시간 격일제 근무는 휴게시간이 있더라도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밤에 당직을 서는 사람을 따로 두는 당직제 근무 체계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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