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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년기획 2018-반쪽 지방분권…길을 찾다 ②국내 현실은] 한국 분권1번지 제주특별자치도…11년 역사 ‘무늬만 자치’
#1. 제주특별자치도는 2006년도 중앙정부로부터 국가도로 건설권한을 이양받았다. 특별자치도로서 도내 인프라를 스스로 구축하라며 이에 대한 자치권을 준 것이다. 하지만 권한 뿐, 국가로부터 ‘돈’은 건네받지 못했다. 매년 1000억원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2016년 기준으로 국도 신설비용은 710억원, 유지보수비는 420억원이다. 2015년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제주자치특별법)’ 개정으로 국가로부터 건설비용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지만 아직까지 비용은 도예산으로 충당하고 있다. 나용해 제주특별자치도 특별자치제도추진단 단장은 “지금 상황으로는 특별자치도는 반쪽자리가 아닌, 반의 반쪽 자리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2. 지난 6월 제주도에 조류독감 의심 사례가 발생하자 자치경찰이 수색에 나섰다. 하지만 현장에 출동한 자치 경찰은 “당신이 경찰이냐”라는 말을 들으며 업무에 임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난해 여름에는 자치경찰이 음주단속 중이던 차량에 매달려 30m 가량 끌려간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 이 사고로 자치경찰과 피의자 모두가 국가경찰 앞에서 조서를 쓰게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제주특별자치경찰 관계자는 “국가경찰과 달리 일반 수사권한이 부재해 범죄 예방 등을 위한 권력적 경찰활동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특별자치도’로서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받았다는 제주특별자치도의 현 주소다. 제주도는 중앙정부로부터 권한은 이양 받았으나 집행에 필요한 ‘돈’은 받지 못해 반쪽자리 특별자치도가 됐고, 명확하지 않은 업무분담과 어정정한 권한 이양으로 ‘자치경찰’은 ‘무늬만 경찰’이 되고 말았다. 헌법 개정 논의가 어느 정도 무르익은 가운데 그 방향 중 하나로 ‘지방분권형 개헌’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제주도는 2006년 7월1일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특별자치도가 됐다. 당시 정부는 외교와 국방, 그리고 사법을 제외한 고도의 자치권이 부여된 ‘자치단체’가 출범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특별법에 따라 중앙정부가 가진 4537건의 권한이 제주도에 이양되고 자치권은 양적으로 확대됐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세종시와 함께 제주도를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 시범도시로 지정하기도 했다.
권한이 주어지면서 성과도 있었다. 2006년 출범당시 56만명이었던 제주도민은 2016년 66만명이 됐다. 17.2%가 늘어난 것으로 전국 지자체 평균 5.2%를 훌쩍 뛰어넘었다. 531만명이었던 외국인 관광객은 두 배 가까이 증가해 1585만명이 됐다. 지역내 총생산(GRDP)도 2006년 1.9%에서 2015년 5.3%로 뛰었다. 4.5%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전국 평균 3.5%포인트를 상회한다.
하지만 걸림돌이 더 많다. 재정자립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OCED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연방제 국가인 미국의 국세와 지방세 비율은 52.5대 47.5다. 독일의 경우 52대 48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80대 20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제주도 역시 20%대 수준이다.
자치권 보장과 법률의 충돌도 지방분권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2015년 서울 중앙 정부가 지방재정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지자체별로 설치된 ‘보조금심의위원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보리수확시기(6~7월)을 맞아 수확기가 필요한 농민들은 5가구당 1500만원의 수확기 구매 지원금을 제주도로부터 받을 수 있지만 ‘법률’이 제정되면서 수확기 구매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법률로 ‘보조금심의위원회’ 설치를 규정하면서 도예산 지원조차 탄력적으로 못하게 돼 버렸다. 한국농업경영인제주특별자치도연합회(이하 한농연)는 지난 12일 보조금심의위원회를 폐지하라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한농연 관계자는 통화에서 “보조금심의위원회가 생기면서 적시에 보조금을 지금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고 분노했다.
제주도를 벗어나면 지방분권은 이름이 더욱 무색해진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 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성민 울산 중구청장은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현재 상황은 지방분권이라는 말만 있지, 지방분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보면 된다. 지방 정부는 동네 일이나 지역의 일들을 소소히 하는 정도”라고 지적했다.
여기서도 예산이 문제가 된다. 중앙정부와 함께하는 ‘매칭사업’의 경우는 지방 정부의 ‘곳간’을 탈탈 털어야 한다. 박 청장은 “500억원 짜리 빗물저장시설을 만드는데 결정은 중앙정부에서 하고 돈은 250억원짜리만 내준다. 시에서 125억, 구에서 125억원 부담하라고 한다. 125억원을 쓰게 되면 구에서 쓸 수 있는 가용자원을 대폭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분권 실현을 근본적으로 막는 것은 현행 헌법 때문이다. 법률과 자치권의 충돌, 중앙정부에 재정 의존 등이 모두 현행 헌법에서 기인한다. 헌법의 조세법률주의에 따라 지방정부는 조세권을 행사하는데 제약이 따르고 조례가 법률의 제약을 받다 보니 중앙에서 만든 법률과 사사건건 부딪히게 된다.
제주도와 그외 지방자치단체가 지방분권형 개헌을 해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이들은 개헌을 통해 국세와, 세율조정권 및 감면권 등을 이양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스스로 자치법률을 제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줘야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나용해 단장은 “문재인 대통령께서 연방제 수준의 자치분권을 세종과 제주를 실시한다고 하니, 헌법 개정이 어느 정도 될지는 모르지만, 11년 정도 앞서서 자치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특별자치정부라는 헌법적 지위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성민 구청장 역시 “지방분권이 잘 안되는 것은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권력 싸움 때문”이라며 “헌법에 우리나라는 지방분권 국가라는걸 명시를 하게 되면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대등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이제 도시와 도시가 경쟁하는 시대”라며 “지방 정부가 조세권, 입법권을 가질 수 있도록 헌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시=박병국 기자/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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