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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희의 현장에서]좋은 후기는 마케팅, 나쁜 후기는 고소감? 병원들의 아전인수
최근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 등 의료 사고가 늘어나면서 환자들은 어떤 병원을 가야 하나 더욱 막막해졌다. 혹시나 또 비슷한 사고가 나면 어쩌나 걱정하는 마음에 인터넷에서 병원 정보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인터넷에 병원 정보를 검색한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인터넷에서 병원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란 수술만큼 어렵다.

인터넷에서 유독 병원에 대한 정보만 찾기 힘든 이유는 병원 측의 대응에 있었다. 부정적인 내용이 포함된 후기의 경우 병원은 글 작성자에게 명예훼손을 이유로 글 삭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20대 블로거 A씨는 몇 년 전 한 유명치과에 방문한 후 후기를 올렸다가 병원 측의 전화에 한 달 가량 시달려야 했다. 블로그에는 무성의하고 신경질적으로 응대했던 상담실장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이를 알게 된 병원 측은 “해당 글이 병원의 이미지를 실추할 우려가 높다”며 “글을 내리지 않을 경우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고 협박했다. A씨는 “특별히 명예를 훼손할만한 내용이 아니었고 수술을 앞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올린건데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현행법상 인터넷에 병원에 대한 부정적인 글을 올렸다고 해서 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형법상 명예훼손은 대상에 대해 허위가 아니라 사실을 알려도 명예훼손 성립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실을 적시했다고 무조건 명예훼손이 되는 게 아니다. 명예훼손 구성요건에는 어떤 사실을 불특정 다수에게 알려질 수 있는 ‘공연성’과 상대방을 고의적으로 ‘비방할 목적’ 등이 있다. 즉 글 작성자가 악의적으로 병원에 대한 욕설, 비방 등을 쓰지 않았다면 공익을 위해 글을 썼다면 명예훼손이 성립되기 어렵다.

그러나 고소 운운하는 병원측의 연락을 받을 경우 평범한 일반인은 커다란 압박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개인 블로거를 운영하는 B씨도 병원 측의 협박에 글을 내렸다. 그는 “병원이 변호사 선임해서 명예훼손죄로 고소한다고 하니까 괜히 찝찝하고 두려웠다”고 말했다.

병원이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에 명예훼손을 이유로 글을 보지 못하게 하는 블라인드 처리(임시조치)를 요청하는 경우도 흔하다. 8년째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C씨는 지난해 한 병원에서 허리 수술을 받은 뒤 후기를 올렸다가 글이 통째로 사라진 적이 있다. 병원 측에서 네이버에 명예훼손의 사유로 ‘임시조치’를 요청한 것이다. 그는 “명백한 표현의 자유 침”라며 “병원의 명예만 있고 환자의 정보 접근권은 무시당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병원 측의 협박 등으로 병원과 관련된 글을 공유하기 꺼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환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수술이나 치료를 앞둔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병원 정보를 파악하기 어려워졌다. 인터넷 카페에서 병원 후기를 적을 때는 병원을 특정 짓지 않기 위해 이니셜이나 자음만 쓰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수술을 앞둔 환자들은 반쪽 짜리 정보를 들고 어떤 병원을 가야 하나 다시 또 헤매야만 한다. 갑상선 암 수술을 앞둔 환자 정모(43) 씨는 온라인 카페에서 환자들의 수술 후기 등을 검색해봤지만 쉽지 않아 카페 멤버 여러 명에게 쪽지를 건네 병원 수술이 어땠는지 물어봐야만 했다. 그는 “건강과 생명이 걸린 중요한 문제인데도 왜 의료서비스에 대한 평가를 하면 안 되는지 답답하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정보 비대칭을 완화할 만한 방법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초등학교 딸아이의 비염 수술을 알아보고 있는 서울 성동구의 이모(46) 씨는 “최근 의료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어서 어떤 병원을 가야 할지 답답한데 정보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며 “병원 경험자에게 얘기를 들어보는 게 중요한데 병원의 명예훼손 운운 압력에 다들 침묵을 강요받고 있어 억울하다”고 말했다.

병원 선택 전 사람들의 경험담을 참고하는 것은 의료 소비자의 너무 당연하고 합리적인 행동이다. 병원 측이 명예훼손을 이유로 사람들에게 글을 내리라고 협박할 권리는 없다. 일부 병원은 체험단을 모집해 긍정적인 후기를 남기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병원은 마케팅이라는 이유로 돈을 주고 좋은 평판을 사면서, 의료소비자가 서비스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은 명예훼손이라고 협박하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물론 악의적인 비방을 일삼는 블랙컨슈머들은 법으로 응징하면 된다. 하지만 병원의 명예만큼 환자들의 정보 접근권 역시 소중하다는 걸 명심하기 바란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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