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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탐색]병원 후기 올리면 명예훼손?…“병원 정보는 어디서 얻나요?”
-부정적인 내용 담기면 ‘명예훼손 고소’ 협박
-“공유하고 싶어 올린건데…글 내릴 수밖에”
-수술 앞두고 병원 정보 ‘깜깜’…환자는 ‘답답’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20대 블로거 A씨는 몇 년 전 한 유명치과에 방문한 후 후기를 올렸다가 병원 측의 전화에 한 달 가량 시달려야 했다. 블로그에는 무성의하고 신경질적으로 응대했던 상담실장에 대한 내용이 담겼었다. 블로거 이웃들에게 ‘큰 수술은 충분한 상담을 받아보라’는 권유메시지도 담았다. 그러나 이를 본 병원 측은 “해당 글이 병원의 이미지를 실추할 우려가 높다”며 “글을 내리지 않을 경우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고 협박했다. A씨는 “특별히 명예를 훼손할만한 내용이 아니었고 수술을 앞둔 환자들의 알 권리에 도움이 될까 싶어 올린 글이었는데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최근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 등 의료 사고가 늘어나면서 병원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병원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것은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이 포함될 경우 병원 측에서 글 작성자에게 명예훼손을 이유로 글 삭제를 요구하며 압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병원 상담 후기를 올렸다가 병원 측의 요구로 블라인드 처리 된 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명예훼손으로 협박에 병원 후기 삭제= 현행법상 인터넷공간에 병원에 대한 부정적인 글을 올렸다고 해서 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형법상 명예훼손은 대상에 대해 허위가 아니라 사실을 알려도 명예훼손 성립이 가능하다. 그러나 사실을 적시했다고 무조건 명예훼손이 되는 게 아니다. 명예훼손 구성요건에는 어떤 사실을 불특정 다수에게 알려질 수 있는 ‘공연성’과 상대방을 고의적으로 ‘비방할 목적’ 등이 있다. 글 작성자가 악의적으로 병원에 대한 욕설, 비방 등을 쓰지 않았다면 공익을 위해 글을 썼다면 명예훼손이 성립되기 어렵다.

그러나 병원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한다는 연락을 받을 경우 글 작성자는 당황스럽기 마련이다. 글 작성자들은 병원과 실랑이 할 바엔 글을 내려주는 게 속 편하다고 토로한다. 개인 블로거를 운영하는 B씨는 “큰 수술을 앞두고 병원 정보를 묻는 사람들이 많아서 좋은 의도에서 올렸던 것이지만, 병원 측에서 변호사 선임해서 명예훼손죄로 고소한다고 하니까 괜히 찝찝하고 두려웠다”며 “무죄가 나더라도 재판까지 가게 되면 복잡해지니까 글을 삭제했다”고 말했다.

▶병원 요청으로 글 사라져…병원 후기 ‘쉬쉬’= 병원이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에 명예훼손을 이유로 글을 보지 못하게 하는 블라인드 처리(임시조치)를 요청하는 경우도 흔하다. 8년째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C씨는 지난해 한 병원에서 허리 수술을 받은 뒤 후기를 올렸다가 글이 통째로 사라진 적이 있다. 언제부턴가 해당 글은 검색하면 나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병원 측에서 네이버에 명예훼손의 사유로 ‘임시조치’를 요청한 것이다. B씨는 “정성껏 쓴 글이 병원 측의 요구로 인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병원의 명예만 있고 환자의 정보 접근권은 무시 당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다신 병원에 대한 글은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병원 측의 협박 등으로 병원과 관련된 글을 공유하기 꺼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수술이나 치료를 앞둔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병원 정보를 파악하기 어려워졌다. 온라인커뮤니티에선 병원 이름을 알리지 않기 위해 이니셜이나 자음만 쓰는 등 병원 정보를 알리기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갑상선 암 수술을 앞둔 환자 정모(43) 씨는 온라인 카페에서 환자들의 수술 후기 등을 검색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카페 멤버 여러 명에게 쪽지를 건네 병원 수술이 어땠는지 물어봐야만 했다. 그는 “미용, 식당, 영화 등 모든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가능하지 않느냐”며 “건강과 생명이 걸린 중요한 문제인데도 왜 의료서비스에 대한 평가를 하면 안 되는지 답답하다”고 비판했다.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정보 비대칭을 완화할 만한 방법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딸 아이의 비염 수술을 알아보고 있는 서울 성동구의 이모(46) 씨는 “최근 이대 목동병원 등 의료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어서 어떤 병원을 가야 할지 답답한데 정보를 구하기 힘들다”며 “병원 경험자에게 얘기를 들어보는 게 중요한데 병원의 명예가 훼손된다는 이유로 침묵하고 있는 게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에 병원 후기를 올릴 경우 병원을 악의적으로 비방할 목적이 아니라 정보 공유 목적이 있음을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강신범 변호사는 “병원 측이 명예훼손을 걸겠다고 해서 모두 소송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작성자가 글을 쓸 때 형법상 명예훼손 성립요건 중 ‘비방할 목적’이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이에 대해서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병원 측에 알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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