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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숙인은 공공화장실도 못쓴다?
역 등 공공장소서 쫓겨나기 일쑤
무연고 사망 올 서울서만 157명

#. 서울역에서 4년째 노숙 생활을 하고 있는 A씨는 최근 역사 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중 용역 경비원에게 쫓겨났다. 경비원은 “여기 있으면 안 된다. 빨리 나가라”며 무작정 나가라고 했다. 다른 역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어도 쫓겨났다. 1년 전에는 경찰이 불심검문을 해 가방을 다 뒤지는 일도 있었다. 그는 “내가 볼품 없다고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사람에게 못된 일을 하지 않았다. 단지 돈이 없는 것 뿐”이라고 억울해했다.

박 씨처럼 최근 역에서 퇴거 당한 홈리스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2017홈리스 인권실태 조사를 보면 최근 2년 간 공공장소에서 퇴거를 강요당한 경험이 있는 홈리스가 61%에 달했다. 특히 68%는 운영시간 중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장소의 출입을 제지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역에서 만난 여 홈리스. 그는 “일을 하고 싶지만 구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거리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다.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돕는 ‘나눔과나눔’에 따르면 올해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351명 중 약 45%(157명)가 홈리스였다. 단순히 인권침해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실제 서울역 근처에서 만난 홈리스들은 인권 침해의 배경에는 홈리스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 자리잡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오후 3시께 서울역 14번 출구 근처에서 만난 홈리스 현정순(52ㆍ여) 씨는 “일도 안하고 사람한테 폐만 끼친다고 하는데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다. 갈 곳이 없고 일할 곳이 없어서 이곳에 머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어떤 일을 해봤는지 묻자 양손의 짐을 내려놓고 연신 손가락을 접기 시작했다. “파출부, 청소부, 파출부, 청소부, 파출부” 어느새 열 손가락이 다 잡혔다.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듯 현 씨는 희미하게 웃었다. “일자리 센터에 등록을 해놨는데 연락이 없어요. 요즘 자꾸 정신이 오락가락 해서 날 뽑아줄지 모르겠어요.”

홈리스가 게으르고 무능력하다는 사회적 낙인이 일자리를 얻는데도 짐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같은 날 용산 쪽방촌에서 만난 박동국(46) 씨는 “이미 나는 가진 게 없는 사람이라는 게 머리에 각인돼 버렸다. 자꾸 위축되고 열등감이 생겨서 세상 밖으로 안 나가게 된다”고 털어놨다.

홈리스를 배제하고 무시하는 대신 그들이 왜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진욱 나눔과나눔 대표는 홈리스에게도 각자 사연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홈리스 대다수는 노숙을 오래 할 생각으로 거리에 나온 게 아니다. IMF로 일자리를 잃고 잠깐 노숙을 하면서 재기를 꿈꿨지만, 금융브로커들이 개인정보를 빼내 불법 대출을 받고 신용불량자가 돼버린 경우가 상당수다. 이 때부터는 재기가 불가능해져 희망조차 사라졌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홈리스 중 일을 하지 않으려는 분들은 없다. 노숙을 오래해 건강이 악화돼 일하고 싶어도 못하고 결국 일용직 노동시장에서도 나약하고 무능하다고 배제 당해 절망에 빠지게 된 것”이라며 “홈리스에 대한 보다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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