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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썬맘의 유치원 도전기

처음 접한 11월 유치원 입학 대란
연차, 알바 동원 끝 6전1기로 성공
새벽부터 부모 줄세우는 구태 여전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4살, 2살 아들을 두고 있는 ‘투썬맘(two son mom)’ 기자가 올 가을 생전 처음 ‘유치원 입학 대란’을 겪었습니다. 여지껏 “유치원 당첨이 아파트 분양 뺨치는 로또”라는 말을 귀로 흘려들었습니다. 막상 닥쳐보니 유치원 입학은 발품에 인력 풀, 자금력, 운까지 필요한 일이더군요. 한 달 동안 치른 유치원 입학 대란의 이모 저모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11월이 되면 수시로 인근 유치원의 홈페이지나 지역 커뮤니티를 둘러봐야 합니다. 유치원에 직접 전화를 해봐도 좋습니다. 입학설명회 일정을 챙겨야 하니까요.

사립유치원은 입학설명회나 접수, 추첨 등이 원마다 제각각입니다. 어떤 곳들은 입학설명회가 끝나고 현장에서 지원서를 받기 때문에 반드시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유치원 운영에 대한 정보가 나오기 때문에 설명회는 가급적 참여하는게 좋습니다. 예약 인원만 설명회에 올 수 있게 하는 곳들도 있으니 예약을 받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사진설명 : 지난 1일 서울의 한 유치원에서 신입생 추첨이 이뤄지고 있다.(사진은 기사 속 특정 내용과 상관이 없습니다) [사진 = 연합뉴스]


인터넷을 뒤지고 전화를 돌려 확인한 입학설명회 일정은 총 8곳. 처음 잡힌 입학설명회는 금요일 오후 4시였습니다. 이후에도 금요일 오후 4시에 설명회를 한 유치원이 한 곳 더 있었고, 추첨을 화요일 오후 4시에 한 곳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황당했습니다. 평일 오후 4시에 올 수 있는 직장인이 얼마나 될까요. 시작부터 맞벌이 부부에게는 넘기 힘든 문턱입니다. 늦게까지 남아서 설명회를 하려면 유치원 선생님들도 힘드실 겁니다. 그러나 기회가 공정하게 열려있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도 살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올 가을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터라 쓸 수 있는 연차가 없었습니다. 평택에서 근무하는 남편이 없는 반차를 끌어써가며 간신히 설명회를 챙겼습니다. 설명회가 한창일때는 토요일에 3군데를 간 적도 있었습니다. ‘입학설명회 투어’를 돌고 나니 하루가 다 가더군요.

인근 유치원 중 접수가 가장 빨랐던 곳은 그냥 포기했습니다. 유치원에서 직접 접수를 받는데, 접수번호 순으로 대기번호를 부여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은 결원이 생기면 대기 순으로 아이를 입학시키는 것까지 염두에 둡니다. 접수 순으로 대기를 받는다는 것은 대기 입학을 노린다면 새벽이건 한밤중이건 일찍 오라는 얘깁니다.

이른 시간에 출근해야 하는 저희 부부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현장에 갔던 이들의 말을 전해 들으니 오전 7시에 이미 60여명 줄섰답니다. IT강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추운 새벽부터 부모 줄세우기를 시전하는 행태가 무얼 위한 것인지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IT인프라를 활용한 경우도 아쉬운 점은 많았습니다. 국공립 유치원은 정해진 기간 동안 ‘처음학교로’ 사이트에서 일괄 접수를 받고 이후 추첨을 합니다. 접수 시작 첫 날은 사이트 구경도 못해봤습니다. 접속이 폭주해 ‘서비스 접속 대기 중입니다’라는 안내 문구만 나왔습니다. 열리지도 않는 홈페이지가 친절하게 ‘재접속하시면 대기 시간이 더 길어집니다’라고 경고까지 해주더군요.

셋째날이 되어서야 사이트 구경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발품 팔 일 없으니 편하긴 했지만 국공립유치원은 접수 이후가 더 문제입니다.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너무 적어서 ‘깜깜이’, ‘묻지마’로 신청을 해야 합니다. 당첨 된 후에 등록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한 군데 신청한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은 떨어졌습니다. 대신 사립유치원을 6군데 넣었습니다. 추첨 일정을 받고 보니 ‘가관’이더군요. 4곳의 추첨이 한 날에 몰렸습니다. 추첨하는 자리에 아이 부모나 대리인이 없으면 바로 탈락됩니다. 추첨일에 아이는 데려오지 말라고도 합니다. 추첨하는 동안 아이를 봐줄 사람까지 따로 있어야 합니다.

남편과 친정어머니로도 모자라 아르바이트 할 사람 2명을 동원했습니다. 한 분은 아이들을 돌봤고, 다른 일일 도우미분과 친정 어머니, 남편, 저의 순으로 추첨을 맡았습니다.

모바일 메신저로 맡을 지역을 나누고, 서로 건투를 빌었습니다. 훈훈했던 카톡방은 이내 안타까운 말로만 가득찼습니다. “어떡해요, 안됐어요”, “꽝”, “에고…떨어졌네”. 패전을 알리는 말들이 올라올 때마다 심장이 조금씩 내려앉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오후 7시에 제가 나섰습니다. 모집인원은 15명. 현장에 모인 이들은 110명이 넘었습니다. 이 정도 경쟁률을 뚫고 당첨되는게 더 이상해 보였습니다.

결과는 탈락. 터덜 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만 3세, 한국 나이로 5세부터는 갈 수 있는 어린이집 수도 확 줄어듭니다. 어린이집에서는 유치원 가는 아이들이 많아 5세 반을 만들기 쉽지 않다고 합니다. 정작 유치원에 가려면 15명, 30명 모집에 100명 넘는 지원자가 몰리는 일이 매년 반복됩니다. 궁여지책으로 한 달에 120만~130만원을 들여가며 영어유치원이나 놀이학교를 보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마지막 한 군데 남았던 유치원에 당첨됐습니다. 저는 너무 기뻐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행운을 낚은 남편은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옆에서 울고 있는 다른 학부모들을 보니 차마 기뻐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 심정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저도 탈락이 계속됐을 때 속으로 울었으니까요.

2006년부터 정부가 10년 동안 저출산 해결을 위해 쏟아부은 예산이 80조원이랍니다. 그 기간 합계출산율은 1.25명에서 1.17명(2016년 기준)으로 줄었다죠. 저출산 해결은 돈만으로 되는게 아닙니다. 부부 중 한 명이 경제활동을 접고 양육에 ‘올인’할 수 있을 만큼 돈을 줄게 아니라면, 출산후에도 무리없이 일을 하고 육아와 사회 생활을 병행할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란’, ‘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린이집, 유치원 찾기가 힘든데 어디에서 시스템을 찾겠습니까. 산후조리원에서 어린이집 신청을 해야 하고, 부부가 번갈아가며 새벽에 유치원 정문에 줄을 서야하는 상황을 보고 아이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부부가 몇이나 될까요.

최근 ‘아동 수당’을 두고도 말이 많았습니다. 아이 둘 키우는 입장에서 감히 말씀드린다면 ‘아동 수당’이 저출산 해결에 큰 도움 될 리는 만무합니다. 당장 내년에 아이 보낼 곳이 없어 눈물 흘리는 엄마에게 한 달 10만원 쥐어준들 그 눈물이 닦이겠습니까.

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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