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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호사 비밀보호권 침해 논란①] “불법이면 압수 가능” vs “수사 자제 필요”
-수사기관, “영장 발부된 이상 증거 제출 거부 못해”
-변호사업계 “기밀유지 안되면 변호사 배제로 준법경영 약화”
-20대 국회에서도 ‘변호사 비밀 보호권’ 명문화 입법안 발의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지난해 8월 롯데그룹 경영비리를 수사하던 검찰은 서울의 한 대형 로펌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롯데 신격호 총괄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을 서미경 씨와 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게 넘겨주는 과정에서 조세문제를 자문했던 로펌이었다. 변호사업계는 크게 반발했다. 변호사는 업무상 알게 된 기업 비밀을 유지해야 할 의무를 지는데 검찰이 수사 편의를 위해 로펌을 뒤진다면 제대로 된 법적 조언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검찰이 로펌에서 확보한 자료는 신 총괄회장 일가의 조세포탈 혐의를 구성하는 데 주요 자료로 쓰였다.

지난해 검찰 롯데수사팀의 로펌 압수수색을 계기로 변호사의 의뢰인 비밀 보호권(Attorney-Client Privilege· ACP)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회장 김현)는 최근 ‘변호사 비밀유지권 토론회’를 열고 이 문제를 다뤘다. 국회에서도 판사 출신의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ACP 보장을 명문화한 변호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검찰이 지난해 6월 롯데정책본부를 압수수색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변호사는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발설하지 않을 의무를 진다. 문제는 수사기관이 강제수사에 나설 경우 맞설 방법은 없다는 점이다. 이와달리 해외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변호사의 비밀유지를 의뢰인에 대한 의무인 동시에 제3자에게 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선 법무법인 한결의 안식 변호사는 “변호사의 비밀유지제도는 변호사제도의 근간을 구성하는 것으로, 사법제도의 신뢰성 제고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수사기관은 이 권리를 폭넓게 인정할 경우 의뢰인, 특히 사내변호사를 두고 있는 기업이 로펌을 ‘자료 도피처’로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법무부는 2013년 노철래 의원이 발의한 변호사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신중검토’ 의견을 냈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했는데도 ACP를 이유로 범죄 증거 제출을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다.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검찰이 변호사의 법률 자문 내용을 수사 대상으로 삼으면 오히려 준법 경영이 어려워진다는 주장이다. 변호사 법률 자문 내용이 강제로 외부에 알려지는 일이 빈번하면 기업은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변호사를 배제하려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 기업들이 준법 경영을 하려는 의지를 꺾고, 탈법 경영을 막을 안전장치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병화 한국사내변호사회 회장은 “검찰이나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국가기관이 기업에 조사를 나올 때 변호사의 컴퓨터나 자료부터 압수하거나, 임의제출 받는 경우가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ACP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기업 측이 재판 과정에서 방어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검찰이 로펌에서 확보한 법률의견서를 혐의 입증 자료로 제출하더라도, 형사소송법상 자문을 맡았던 변호사가 ‘실제 자문한 것과 다른 내용이 기재됐다’고 법정에서 진술하면 형사소송법상 증거로 쓰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호사의 비밀유지권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수사단계에서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반론이 있다. 또 형사재판과 별개인 공정거래위원회나 세무당국의 조사 영역에서는 일단 자료가 넘어가면 사실상 내용에 관해 다툴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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