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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단 유령’에 짓밟힌, 기억해야 할 우리 할머니들의 삶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 임흥순 신작 공개
‘현대차 시리즈-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展
격변의 근현대사 속에서 상처입은 개인얘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서 내년 4월8일까지


일제 감시와 탄압을 피해 1920년 상해로 망명, 26년간 조선과 중국을 오가며 임시정부의 자금전달역을 했던 정정화(1900~1991), 항일운동가의 자녀로 제주 4ㆍ3항쟁 당시 토벌대를 피해 한라산에 올랐고 이후 지리산, 일본 오사카로 밀항해 평생을 일본에 살았던 김동일(1932~2017), 산으로 올라간 아버지와 오빠, 동생을 찾으러 지리산에 갔다 3년간 빨치산으로 지냈던 고계연(85), 10대에 한국전쟁을 겪고 20대에 베트남 전쟁 위문단으로 참가했다 이란에 정착해 살던 중 이란ㆍ이라크전 까지 겪었던 이정숙(73). 이 네 명 할머니의 개인사는 굴곡진 한국현대사를 고스란히 담고있다.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담은 ‘위로공단’(2014)으로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한 작가 임흥순이 이번엔 ‘분단 이데올로기’에 집중한다. 11월 30일부터 시작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MMCA 현대차 시리즈 2017: 임흥순-우리를 갈라놓는 것들_믿음, 신념, 사랑, 배신, 증오, 공포, 유령’ 전에서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영상 중 한장면.

임흥순 작가는 격변의 근현대사속에서 상처입고 소외된 이들의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분단 이데올로기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어떻게 파괴해 나갔는지 보여준다. 그는 “예술은 공적인 역사를 다루기도 하지만 사적인 역사를 말하기도한다.

지금 세대가 네 분의 할머니와 같은 삶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그들이 겪은 사건을 반복하지 않고 어떻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며 “예술은 ‘역사 속에서 고통을 겪으신 분들의 삶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제 5전시실과 7전시실을 활용하는 이번 전시엔 신작 10여점이 나왔다. 메인 전시장인 제 5전시실엔 ‘우리를 갈라 놓은 것들’(상영시간 45분)이 상영된다. 정정화, 김동일, 고계연 할머니 3명의 삶을 1년 넘는 기간동안 인터뷰한 영상과 연기자의 연기로 재구성했다. 3채널 영상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할머니들의 역사적 생채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영상 중 한장면.

영상만으로 전시장을 채운건 아니다. 나룻배, 사천왕상 문, 계단, 고목 등 영상물을 제작했을때 사용했던 세트장이 자리잡았다.

작가는 이곳을 산자와 죽은자가 공존하는 이계(異界)로 설정했다. 국립현대미술관측은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세계로 건너가기 위해 존재하는 일종의 경계이자 중간 지대로, 수많은 죽음과 희생의 역사를 감내한 평범한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곳”이라며 “군사시설이었던 서울관의 역사적 맥락을 개인의 상처, 역사의 상실과 상흔을 보듬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장소로 확장됐다”고 평했다. 

제 5전시실에 설치된 생전 할머니들이 사용한 소품들.

5전시실 끝에는 영상을 제작하던 중 돌아가신 김동일 할머니의 유품 4000여 점이 가지런히 정리됐다. 더불어 7전시실에선 이정숙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환생’이 2채널 영상으로 관객과 만난다.

이번 전시는 내년 3월 장편영화로도 선보인다. 작품을 설치한 지난달 1일부터 개막일인 30일 전날까지 관객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진행, 작품 속 주인공의 삶을 참여자와 공유하고 서로 경험을 연결지어 한편의 영화로 제작할 예정이다. 전시와 함께 임흥순 작가의 창작과 작품세계를 살펴보는 국제 심포지엄과 영화 작품 상영을 위한 임흥순 감독 주간이 3월 한 달 동안 이어진다. 전시는 내년 4월 8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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