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지원결정 이후 ‘감감’
통일부 장관, WFP 총장 접견
북미관계 악화…집행 딜레마
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한 800만 달러(약 88억 원) 규모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결정한지 두 달이 지났지만 지원시기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정치적 상황과 인도적 지원은 무관하다’는 원칙론에 맞서 북한의 태도와 한반도 정세를 감안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무시할 수 없는 탓이다. 최근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함에 따라 정부의 고민도 한층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22일 오후 데이비드 비슬리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과 비공개 접견을 갖는다. 조 장관은 이 자리에서 비슬리 사무총장과 북한의 열악한 인권 실태와 대북 인도지원 집행 시기 등에 관한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비슬리 총장은 우리 정부가 결정한 WFP 공여 계획 450만 달러의 조속한 집행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지난 9월 21일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열고 WFP의 아동ㆍ임산부 대상 영양강화 식품 제공 사업에 450만 달러, 유니세프의 아동ㆍ임산부 대상 백신 및 필수 의약품 등 지원 사업에 350만 달러를 각각 지원하겠다고 의결했다. 이후 공여를 위한 국제기구와의 실무 협의도 사실상 마무리됐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지원금 집행이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적절한 타이밍을 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대북 지원을 결정할 당시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구체적 지원 시기에 있어서는 남북 관계와 한반도 정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는 현실론에 부딪힌 셈이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최대한의 압박과 관여’를 강조하며 고립을 통해 비핵화 협상으로 끌어내려는 노력과 정부의 지원과 대화 시도가 ‘엇박자’라는 일각의 비판을 신경을 쓰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대북 지원의 ‘적절한 타이밍’이 쉽게 올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인 쑹타오(宋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방북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면담을 추진했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다. 대화 국면 전환이 좌초되자 미국은 북한을 9년만에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고 무역 봉쇄를 골자로 하는 새 독자 제재를 내놓으며 더 강한 압박책을 쓰고 있다. 북한이 이에 반발해 긴 침묵을 깨고 연내 추가 도발을 감행한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강 대 강’ 대치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반도 정세가 악화되면 대북 인도적 지원은 물론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여 등 우리 정부의 한반도 평화 정책도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800만 달러가 그리 크지 않은 규모고 대북 지원은 남북 관계의 상징성을 보여줄 것”이라면서도 “정부로서는 아무리 인도적 지원이라 할 지라도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유은수 기자/ye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