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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학 전공은 뒷전…취업공장된 대학
이중전공으로 학점관리 몰두
비인기 전공, 456개 폐과·통폐합


#. 서울 소재 사립대학교에서 인문학부에 재학중인 A 씨는 최근 전공 수업 팀플 과제를 준비하다가 진땀을 뺐다. 비협조적이고 방어적 태도로 일관하는 스터원 때문이었다. 비슷한 학년에 같은 학과임에도 “이 수업 힘들다고 들었는데 막 학기라 전공 학점 채우려고 넣은 거거든요. 취업준비 때문에 자주 못 모일 것 같아요”라며 울상 짓거나 “죄송하지만 평일 오후에는 경영학회 세션 준비 때문에 시간이 없는데 카톡으로 회의하죠”라며 과제를 등한시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전공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향후 대학원까지 생각하는 이 씨는 이같은 주변 분위기 때문에 “무인도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 같다”며 답답해했다.

사상 최악의 실업난으로 인문계열 구직이 어려워지면서 취업 취약학과로 여겨지는 문사철(문학ㆍ사학ㆍ철학) 등 순수 인문학과 전공 수업시간이 ‘시간 때우기’용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소재 국립대 어문계열 재학생인 김민서(27ㆍ가명) 씨는 “상경계 이중전공 학과에서 하는 행사에 모두 참여하면서 인맥 만들기에 나서는 경우가 몇년 전부터 흔했다. 본 전공과 이중전공이 주객전도된 학생들이 많다보니 수업 분위기에도 악영향이 있었다. 토론식 전공수업에서조차 수강생끼리 깊이있는 토론을 할 수 없어서 아쉬웠고 수업 중 추가 질문은 할 때 오히려 눈치가 보이는 상황도 있었다”고 인문계 강의 분위기를 전했다.

국문학 전공생인 이현수(25ㆍ가명) 씨도 “취업이 해를 거듭할수록 어려워지다보니 순수 인문학 전공으론 취업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있다. 이중전공으로 상경계 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1,2 학년 때부터 학점관리에 몰두하고, 경영ㆍ마케팅 학회에 들어가기 위해 정장을 갖춰입고 3차 면접까지 보는 경우도 흔하다”고 말했다.

인문학 전공생이 본 전공을 등한시하는 상황은 기업체 고용 수요가 공대나 경영ㆍ경제 계열에 집중된 취업 시장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통계상으로 확인되는 인문계 취업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5년도 전문대학 이상의 전체 졸업자 중 취업대상자 50만8000명을 조사한 결과, 인문계열 취업률은 57.6%로 나타나 의약계열(82.2%), 공학계열(72.8%)과 격차가 크다. 본 전공만으로 살아남을 없다는 절박함이 반영된 결과인 셈이다.

그러나 일부 대학은 이같은 문제상황을 인문계열 통폐합으로 해결하려고 나서면서 인문학의 위기는 더욱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앙대는 두산그룹에 인수된 후 2010년 18개 단과대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 46개 학과로 통폐합했다. 2013년에는 비교민속학과 등 인문학 전공과 아동복지·가족복지·청소년학과 등을 폐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올해 서울 동덕여자대학교도 인문대학 소속 ‘국문과’와 ‘국사학과’를 ‘한국문화전공’으로 통합하려다 학생들의 반발 끝에 철회한 바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5년 한해 동안 456개의 학과가 폐과 혹은 통폐합됐다. 인문, 사회, 예체능 계열이 대부분이다.

서울 소재 대학 모 교수는 “인문학에 애정을 갖고 전공을 선택한 학생들은 여전히 많다. 그들의 학문적 열정에 보답하기 위해 매학기 강의계획서를 새로 짜면서 고민하고 있다”며 “교수들도 학생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사고할 수 있게 돕는 인문학적 역량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인문학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상담센터 등을 통해 본전공과 관련된 커리어를 쌓으려는 학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김유진 기자/kac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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