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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혐오공화국②]맘충ㆍ틀딱충ㆍ급식충…초등교실서 혐오가 자란다
-혐오 표현 금지에도…학교에서는 만연
-“단순히 집단 수식어로 사용…자각 없어”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초등학교 6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김모(41ㆍ여) 씨는 최근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뱉은 말에 충격을 받았다. 할아버지를 향해 “할아버지도 틀니 딱딱 소리가 나느냐”고 말하며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나중에서야 의미를 알게 된 김 씨는 혼까지 냈다. 그러나 아들은 “스스로 급식충이라고 말하는 것이 왜 잘못됐느냐”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김 씨는 “벌레라는 표현이 나쁘다고 가르쳐봤지만, 주위에서 모두 쓰고 있다며 아들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혐오 표현을 쓰면서도 혐오를 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른바 ‘급식체’라는 신조어 틈에 섞여 자신도 모르게 혐오 표현을 거리낌 없이 쓰는 아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자신을 지칭할 때도 혐오 표현을 쓰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등 문제의식조차 희미하다는 점이다.

[사진=게티이미지]

중학생 이모(15) 군은 자신을 당당히 ‘급식충’이라고 표현한다. 급식충은 학교를 다니며 급식을 먹는 학생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 군은 주변에서도 급식충이라는 표현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군은 “누군가 나를 급식충이라고 불러도 별다른 거부감은 없다”며 “우리 세대를 설명하는 표현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인터넷에서는 자신을 급식충이라고 당당하게 소개하는 경우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어린 학생들이 아니더라도 세대 혐오는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부모 세대를 직접적으로 비하하는 ‘맘충’이나 ‘애비충’같은 표현에서 노인 세대를 비하하는 ‘틀딱충’도 이미 인터넷 등에서는 식상한 표현으로 통하고 있다. 심지어는 젊은 층 안에서도 10대와 20대가 나뉘어 서로 ‘급식충’과 ‘학식충’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른바 ‘○○충’은 벨레(蟲)라는 표현을 덧붙여 특정 대상에 대한 비하의 뜻을 담고 있다. 시작은 극우성향 인터넷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저장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일베충’이었다. 당시에는 강한 혐오의 뜻을 담은 표현이었지만, 지금은 단순히 한 집단을 설명하는 수식어로 쓰이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이명서 한국사회심리연구원 연구사는 “이들이 집단을 표현하고 규정하는 방법으로 ‘○○충’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향이 있는 것은 맞다”며 “다만, 벌레라는 어원을 생각했을 때 이를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면이 있어 올바른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충’과 같은 혐오 표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서울시는 학내에서 벌레 등을 언급하는 등 차별 발언을 금지하는 학생조례까지 만들었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 조례안은 무용지물인 상황이다.

서울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이모(51) 씨는 “급식충이라는 표현을 듣고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스스로를 비하하는 표현을 보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지적에도 오히려 당당한 학생들의 모습에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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