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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 덕 본 사람들은 이미 비행기에 올라탔다”
-‘제사’ 두고 세대갈등 격화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조상 도움 받은 사람들은 차례는커녕 모두 휴양지로 떠났다는데…”

직장인 주모(27·여) 씨는 임시공휴일을 더해 모두 10일이나 되는 추석 ‘황금 연휴’를 맞아 가족들과 함께 기분전환을 하는 건 어떨까하는 마음으로 부모님께 가족여행을 권유했지만 단호한 거절로 뜻을 접어야만 했다. 연휴 내내 제사 일정이 잡혀있어 갈 틈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주 씨는 “명절을 맞아 가족, 친척들이 모이는 건 좋지만 솔직히 말해 제사를 언제까지 지내야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며 “매년 빠짐없이 음식을 장만하는 데서, 음식을 놓는 위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빚는데 차라리 간소화하거나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고 토로했다.

10일 간의 긴 황금 연휴 중 제사를 지낼 때가 가장 많은 ‘추석 당일’인 4일, 제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게 새나오고 있다. 특히 명분보단 실리를 선호하는 20~30대 사이에선 “간소화할 때도 됐다”는 말도 거리낌없이 나오는 중이다.



대구에 사는 직장인 이현경(31·여) 씨는 연달아 잡힌 제사 일정으로 추석 연휴를 꼬박 부엌에 앉아 보내는 중이다. 제사 음식을 만들면서 뒤따라 나오는 청소, 설거지 등 잔일을 하다보면 연휴가 연휴같지 않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그는 “조상을 섬겨야 한다는 전통을 거스르자는 건 아니지만 요리를 하다보면 ‘언제까지 이걸 해야하나’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면서 “솔직히 말해, 이젠 누구를 위한 과정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직장인 이진모(29) 씨는 제사로 인해 모처럼 있는 연휴를 깔끔히 포기했다. 올해 1월 중소기업에 취업한 이 씨는 단 하루의 휴가 없이 10개월을 달려온 상황에서, 이번 연휴를 통해 제주도로 가 숨을 돌릴까도 생각했지만 친척들의 불호령으로 차마 계획을 시행하지 못했다. 그는 “친척들은 ‘조상 제대로 안 섬기는 이가 잘 되는 꼴을 못 봤다’는 말로 다그쳤지만 솔직히 그 말이 이해가 가진 않았다”며 “열심히 일하면서 가문을 빛내는 게 조상을 섬기는 것이지, 꼭 제사를 통해서만 조상을 섬길 수 있다고는 솔직히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제사를 꼭 해야 한다는 편에서도 그럴만한 이유는 있다. 무엇보다 수백년 간 이어온 전통이며, 옛 선조들에 대한 예의라는 것이다. 경주에 사는 공모(79·여) 씨는 “전통이 이어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며 “어쨌거나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준 조상에게 1년에 2~3번 감사를 표하는 건데, 그것마저 하기 싫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제사라는 문화이자 전통은 큰 변화를 겪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 전문가는 “현재의 상당수 20~30대가 눈에 보이는 실리 없는 제사 문화를 꺼려하는 게 사실”이라며 “지금 상황으로는 이르면 5년, 10년 내에 제사 자체가 사라지거나 극도로 간소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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