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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연의 외교탐구] ‘레드라인’ 함정에 빠진 文외교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문재인 외교가 ‘레드라인’ 딜레마에 빠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무기화를 레드라인으로 규정한 이후 북한이 단거리미사일 도발과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실거리 발사, 6차 핵실험 등을 감행했다. 북한이 거듭 ICBM 무기화를 위한 도발에 나서면서 문재인 정부는 부랴부랴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1포대 배치와 미 전략자산 전개, 핵잠수함 개발 등 대책마련에 나섰다. 

<사진1> 조선중앙통신은 수소탄시험 성공 기념 축하연에 김정은 위원장과 발사 관계자들이 참석했다고 10일 전했다.


▶‘레드라인’에 집착하는 文정부= 레드라인. 선을 한번 긋고 나면 나중에 감당이 힘든 말이다. 실제 ‘레드라인’을 규정해온 지도자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외교안보 정책에 있어서만큼은 메세지 관리가 허술하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그랬다. 2012년 8월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부가 화학무기 사용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당국의 보고를 받은 오바마 전 대통령은 러시아와 같은 제3국 중재자를 통해 알아사드 정부에 경고를 보내기로 했다. 이때 오바마는 기자회견에서 “화학무기를 이동시키거나 사용하는 것이 레드라인”이라며 “이런 일이 생기면 나의 계산을 바꿀 것”이라고 경고했다. 원고에 없던 발언이었다. 



이후 오바마 정부는 1년 뒤 알아사드 정부가 다마스쿠스 수도의 외곽에 있는 구타 지역에 민간인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하자 후폭풍에 직면했다. 미국은 알아사드 정부에 대한 군사옵션을 검토했지만, 결단을 내리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시리아를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를 간과한 탓이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레드라인을 넘은 것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인터뷰는 외신하고만 할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공공외교 선봉자를 자처했던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 특보는 레드라인 논란이 불거지자 돌연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 나섰다. 문 특보는 지난 4일 현 북핵 관련 상황에 대해 “아직 레드라인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고 해명했다.

레드라인은 구체적인 강력한 조치의 이행을 전제로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은 그동안 북한의 도발에 ‘어떠한’ 응징을 할 것인지 밝힌 적이 없다. 레드라인 담론은 되레 평양의 면역력만 높여주는 효과를 발휘했다. 특정 레드라인을 규정하고 이를 저지하겠다는 구상은 우리의 외교폭 자체를 좁힌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겸임연구원은 “북한이 자신의 일정표대로 도발을 감행할 때 한미도 마찬가지로 예정된 대응의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메세지를 보내야 우리의 외교적 레버리지(leverageㆍ지렛대)를 높일 수 있다”며 “한미가 이행할 수 있는 군사적 대비태세의 종류와 범위를 구체화하고 이에 대한 합의를 우선적으로 이끌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메세지 관리 안하는 文정부, 좁아진 외교적 레버리지= 문재인 정부의 패착은 ‘메시지 관리실패’에 있다. 레드라인 하나만 가지고도 당국자들의 발언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전략 커뮤니케이션(SC)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다.

일반적으로 미국과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정부 관계자들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각 부처 별로 메세지의 틀을 정해놓는다. 사업가 출신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군사옵션에서부터 외교옵션까지 널뛰는 메세지를 발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외교옵션을 버리지 않았다”는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다. SC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수장들은 혼란가중을 막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의 ‘해명자’를 자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반대다. 당국자들 간 발언이 정리돼있지 않다. 정리되지 않은 발언은 그만큼 우리나라 외교안보 수장들이 문 대통령의 외교비전과 정책지향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예증한다. 한 통일부 고위관계자는 “레드라인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강경화 외교장관은 지난 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레드라인 관련 질문을 받자 “넘었다, 안넘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보다는 5차 핵실험 때보다 강력한 수준으로 고도화하고 핵 완성단계로 질주하고 있다는 상황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답변을 유보했다.

당장 북핵문제가 시급한 현안으로 떠오른 상황에 어떠한 전략도, 로드맵도 없이 당국자들은 발언을 마구잡이로 내뱉고 있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청와대가 반대하고 있는 ‘전술핵 재배치’안에 대해 필요하다면 검토하겠다는 발언까지 했다. 이로 인해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 동북아 안보지형에 대한 고려없이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론’이 한국 안보최대의 의제로 떠올랐다. 

체계적 대비없이 ‘실시간 대응’으로 떠오른 미 전략자산 전개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측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폐기를 주장하고, 트위터를 통해 우회적으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등 뒤통수를 맞는 결과를 자초했다.

▶메세지 관리, 모든 외교정책의 시작= 모든 외교안보 정책은 메세지 관리에서부터 시작된다. 메세지 관리가 안 된 외교안보 정책은 혼란만 가중시키고 국가의 신뢰를 떨어뜨릴 뿐이다. 트럼프 행정부만 봐도 그렇다. 

미 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의 혼란스러운 메세지는 그간 미국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이라며 “문제는 이같은 전략이 국가간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소식통은 “훼손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근 미 국무부 측에서의 공공외교 활동이 급증했다”며 “주한미국대사관도 1.5트랙 중심의 공공외교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전략적 모호성’도 마찬가지다. 사드 임시배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취한 ‘전략적 모호성’은 중국과 미국의 신뢰를 동시에 잃어버리는 ‘악수’로 전락해버렸다. 한 일본 외교소식통은 “문 대통령은 당국자들이 사견을 이야기해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들었다”면서 “하지만 아무리 사견이라고 해도 큰 틀에서는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청와대와 각 부처 수장들의 발언에 일관성이 없으면 한국과 협력하는 국가들의 혼란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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