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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코릿-맛을 공유하다(한식의 재발견) ①] “한식 탐험은 내 운명”…유현수 두레유 셰프의 삶
-코릿 랭킹50, 이름올린 두레유 가보니…
-법고창신 뜻 잇는 모던한식, 밥상에 재현
-‘계절의 맛’ 제철 재료ㆍ‘전통의 맛’ 발효장
-한식 정통성에 창의적 조리법으로 재해석
-“모두가 자부심 가질수 있는 한식 만들것”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 처음부터 ‘한식’이었다. 순전하게 한식이 좋아 부엌칼을 쥐었다. 양식과 퓨전의 광풍에도 한눈 한번 판 적 없었다. 해외 미쉐린 레스토랑으로 떠난 것도 한식을 위해서였다. 한식의 파인 다이닝화를 위해 선진 레스토랑 경험이 필요했다. 

돌아와서는 행자 생활을 자처했다. 한식의 뿌리, 채식을 알고 싶었다. 선재스님을 찾아가 1년간 채식을 배웠다. 계절에 맞는 제철식재료 활용과 발효법을 익혔다. 속세를 미식(美食)으로 물들인 건 한식 파인 다이닝 ‘이십사절기’를 통해서였다. 이십사절기는 지난해 ‘미쉐린’ 별 1개를 받으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서울 가회동 ‘두레유’의 유현수(39) 오너셰프. 그는 한식의 정통성에 창의적 조리법을 이용한 모던한식을 선보이며 묵묵히 한식의 길을 걷고 있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일’을 낸 주인공은 유현수(39) 셰프다. 유 셰프는 총괄을 맡던 이십사절기를 떠나 올 1월부터 ‘두레유’에서 제이름을 걸고 모던한식을 선보이고 있다.

두레유는 올해 코릿(KOREAT)에 이름을 올렸다. 코릿은 한국판 미쉐린 가이드다. 100인 선정단이 꼽은 톱50에 랭크된 것이다.

“한식이 가장 익숙한 음식이라 뽑힌게 아닐까요.”

말은 담담했다.

30대 셰프가 내놓는 음식은 어떨까. 직접 맛을 봤다. 요리는 코스로 구성됐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푸지게 차린 한정식도, 콩알만한 음식을 대접에 내고 ‘있는 체’ 하는 모양새도 없었다. 코스의 단계마다 마치 배우가 무대서 제 역할을 하고 퇴장하듯 각각의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다. “한상차림인 한정식은 셰프의 의도가 필요 없지만, 코스는 다르죠.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어떤 요리를 어떻게 먹어야할지 세심하게 신경 썼습니다.” 
유현수 셰프가 선보이는 두레유 진지상과 토장설야멱.

가장 먼저 씨간장이 제공됐다. 유 셰프가 직접 담가 7년간 숙성한 씨간장은 모든 코스요리의 출발점이다. 오목한 테이스팅 종지에 씨간장을 따랐다. 한 스푼도 안될만큼 적었지만, 쿰쿰하면서도 깊고 풍부한 내음이 식탁을 덮었다. 젓가락에 찍은 간장이 혀끝에 닿자 복잡미묘한 함미(鹹味)가 식욕을 돋운다.

“스타터를 어떻게 해야하나 많은 고민을 했어요. 옛날 우리 밥상서 어르신이 식사 전 간장을 찍어드셨던 기억을 되살렸죠. 메주의 향, 세월의 향을 느끼며 식사를 하셨으면 합니다.” 
우럭을 통째로 튀겨 간장 우엉간장 소스로 맛을 낸 두레유 나물어탕수.

두레유의 씨간장은 실제로 외국인들이 더 좋아한다. 일본의 기코만 간장맛이 전부였던 외국인들에게 새로운 동양의 맛을 일깨운다. 와인 마리아주로도 인기가 좋다.

식사가 시작됐다. 두레유 ‘달코스’에는 은은한 감태죽과 살얼음 물김치를 시작으로 계절침채샐러드, 따뜻한 채소요리, 청국장어회, 관자구이와 해초 어장폼, 나물어탕수, 연잎 연저육찜, 토장설야멱 진지상 그리고 디저트와 차가 제공됐다.

유자소스의 상큼함이 미각세포를 깨우면서 갈아올린 참외의 은근한 단맛에 미소가 번진다. 철갑상어에 들기름, 오독오독한 식감을 더하는 척수와 청국장의 점성, 캐비어의 조화도 새롭다. 우럭을 통째로 튀겨 달큰한 소스를 더한 나물어탕수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라할 만했다. 코스 말미에는 구절판용 방짜유기에 아홉가지 찬과 된장찌개, 떡갈비를 낸다. 산해진미를 먹어도 ‘밥’ 없으면 허전한 손님들을 위한 배려다. 
관자와 어장폼, 컬리플라워 등을 곁들인 두레유 관자구이와 해초 어장폼.

유 셰프의 또다른 야심작은 ‘설야멱적’(雪夜覓炙)’이다. 눈 오는 겨울밤 야외서 화로를 놓고 고기를 구워먹는 기생과 선비들의 모습을 그린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 설후야연(雪後夜宴)에서 따왔다. 고기를 굽다가 눈 속에 넣어 급랭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방법을 현대적인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고온과 저온을 오가며 조직이 무너지고 육질의 부드러움이 극대화된다.

“‘옛날 사람들은 뭘 먹었지’라는 생각에 고서와 그림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조선시대 의궤에 기록된 주안상, 반상, 죽상, 연회 음식 등을 살폈죠. 한식은 연속된 전통의 일환이기에 역사와 흐름을 짚어가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두레유 입구 전경.

유 셰프의 호기심은 오래전 주방 문턱을 넘었다. 낮에는 도서관에서 고서에 탐닉했고 밤이면 주방으로 돌아와 탐험하듯 요리했다. 서양의 계량화된 레시피와 달리 우리 문헌은 체계화된 조리법이 없었다. 한 소끔, 두 되. 두루뭉술한 표현이 전부였다. 직접 부딪쳐보는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선보이는 창의적 요리는 과거에서 얻어온 한식 DNA에 집요한 노력을 더한 결과다. “사실상 모던한식, 뉴코리안퀴진 같은 용어가 나온 게 10년이 채 되지 않아요. 제가 1세대 모던한식 셰프죠. 누구도 가르쳐 줄 사람이 없어요. 여전히 시행착오를 거쳐가는 단계입니다.”

유 셰프는 모던한식의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청담동 입성이 아닌 북촌, 한옥을 택한 것도 한식의 오리지널리티를 계승하려는 욕심이다.

그에게 미래에 대해 물었다. “‘한식이 세계에서 최고’, 이건 아니예요. 다만 우리가 나고 자란 이땅, 이곳에서 얻은 재료,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이롭다는 믿음은 분명해요. 한식의 다이닝 문화를 잘 만들어가고 싶어요. 국가 경쟁력에도 도움이 되고 싶고요. 대를 잇는 식당, 한국인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한식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summ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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