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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연의 외교탐구] 北ㆍ美 초강경 설전 속 한국외교의 최대 과제: ‘메세지 관리’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북ㆍ미간 초강경 설전으로 군사적 충돌 우려가 최고조에 달한 사이, 일각에서는 ‘북미 협상 임박론’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소식통은 “웜비어의 송환 이후에도 북미간 접촉은 계속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AP통신도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박성일 주유엔 북한대표부 차석대사 간 접촉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미 간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돌연 협상가능성이 제기되는 양상은 지난 1994년 제네바 협상과 2005년 9ㆍ19 공동성명, 2012년 2ㆍ29 합의 전개양상과 비슷하다. 

김정은

북ㆍ미간 뭔가 접촉을 가질 기미가 보이면 한국이 소외돼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국내에서 어김없이 나온다. 또, 북ㆍ미간 ‘기싸움’이 고조될 때마다 왜 우리는 아무것도 못하냐는 비판이 어김없이 쏟아진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현재 우리가 ‘나서서’ 할 수있는 일은 ‘없다’. 한국의 외교력은 그만큼 강하지 않다. 더욱이 트럼프 정권 들어서면서 한반도 문제는 국제적 이슈로 부상하게 됐다. 한반도 문제가 강대국의 ‘외교적 수단’이자 ‘패권전략’으로 부각될 수록, 한국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극으로 치닫는 북핵문제에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려면, 국익에 반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최선이다. ‘전쟁’이 아 닌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보이지 않게 북한과 미국, 그리고 중국 사이에서 그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주도적 역할’이다. 대외적으로 한국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데 외교력을 쏟았다간 되레 기껏 조성된 대화의 장을 망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게티이미지

실제로 지난 1994년부터 2012년 북ㆍ미간 협상이 있을 때마다 정부는 한국의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데 함몰된 나머지 갈등기조를 완화하고 실질적 대화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궁극적 목표를 간과했다. 지난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때 우리 정부는 합의문에 ‘남북대화를 재개한다’는 문구를 포함시키려다가 협상 결렬 직전까지 상황을 몰고 갔다. 2011년 북ㆍ미 접촉이 이뤄지려고 하자 정부는 남북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북ㆍ미 접촉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억지’를 부렸다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2012년 ‘2ㆍ29 합의’가 이뤄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시 정부가 미국의 발목을 잡지 않고 접촉을 받아들였다면 2ㆍ29 합의는 김정일의 사망 이전 나왔을 것이고, 북핵문제의 전개양상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위기상황일 수록 정부는 일관된 메세지로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특히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언급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해결책으로 내놓겠다면 대치하는 양측을 물밑에서 중재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중국처럼 대외적으로 중재할 수 있는 외교역량을 갖추지 못했다고 해도 물밑에서 양측의 교섭점을 제시할 수 있다면 정부의 역할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컨트롤타워가 전하는 ‘메세지’는 중구난방하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북한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완화할 것을 촉구했다. 반면, 정의용 실장은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단계별 대치방안을 논의하고,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할 뜻을 재확인했다. 문 특보의 발언은 미국을, 청와대의 발표는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메세지다. 더구나 강경화 외교장관은 지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를 계기로 진행된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에게 “유엔 안보리 신규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을 축하한다, 고맙다”며 북한을 배척하고 있는 듯한 발언을 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정부의 대화제안에 ‘진정성’ 없다고 일축한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한 미국 소식통은 정부가 단계별 메세지 관리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소식통은 “한국 여당에서는 미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야당에서는 미국을 무조건 찬양하고 북한과의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여야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 내에서도 서로 대치되는 메세지가 나올 때가 종종 있다. 상대국가 입장에서 이러한 메세지는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구체적으로 어떤 입장인지, 대화를 하더라도 구체적으로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의 대화를 추구하는지 메세지 관리가 되지 않아 한국의 입장을 배제한 채 외신보도가 나가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세계 각국에 있는 미국 대사관 직원들은 현지 학자들과도 수시로 만나는 등 1.5 트랙 만남을 꺼리지 않는다”면서 “공공외교적으로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메세지 조율을 하기 위한 것이다. 주미한국대사관이나 한국 정부에도 이와 같은 노력이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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