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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청소년의 날②] 자소설에 거짓 장래희망… “가짜 인생이 싫어요”
- 지망하는 학과에 맞춰 인생 재설계하는 학생들
- 양심에 가책 느끼면서도 “대입을 위해선 어쩔 수 없어”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제 인생을 합격률 높은 자소서에 끼워 맞춰 살고 있어요. 무엇이 제 본래 모습인지 헷갈려요.”

경기도 일산에 사는 김소민(19ㆍ여) 학생은 장래희망은 방송국 PD가 되는 것이지만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한 자기소개서에는 ‘과학자’라고 적었다. 김양은 하루에 해외 인디영화를 2편씩 꼬박꼬박 볼 만큼 인디영화 매니아지만 자기소개서에는 ‘발명품 만들기’라고 지어냈다.

김양이 가짜 꿈과 취미를 자소서에 적는 이유는 수시모집에서 장래희망을 일관적으로 적고 취미생활도 전공과 관련되게 쓰는 게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담임선생님의 조언 때문이다.

김양은 “수시 경쟁률이 60대 1이 넘을 만큼 치열하기 때문에 일단 합격하기 좋은 자소서를 쓰는 게 전략적으로 맞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나와 아닌 사람을 지어서 자소설(자기소개서+소설)써야 하는 상황이 괴롭고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수시 전형 확대에 따라 도입된 자기소개서가 학생들의 일상을 통제하는 주객전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12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2018학년도 대입 수시모집 비중은 73.7%에 달한다. 자기소개서가 중심이 되는 학생부종합전형이 증가하면서 입시를 위해 거짓된 자기소개서를 쓰고 이에 맞춰 가짜 생활까지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 학생들 사이에선 자기소개서를 그럴듯하게 쓰는 게 ‘경쟁력’으로 통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의 한 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헤럴드DB]

서울 목동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전형민(18)군은 “대학에 진학한 주변 선배들에게 그동안 지원하는 대학과 전공을 위해 살아온 것처럼 써야 합격한다고”면서 “지금까지 수능준비, 내신 준비로 장래희망이나 전공에 대해서 깊이있게 고민을 할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하루에 한번씩 꿈이 바뀌는데 자소서에는 장래희망을 위해 한우물을 판 것처럼 쓰는 게 부자연스럽지 않냐”며 반문했다.

자소설을 써야 하는 것은 고등학생만은 아니다. 외국어고등학교나 과학고에 진학하는 중학생들도 울며 겨자먹기로 자기소개서를 지어내야만 하는 상황이다.

외국어고등학교 진학을 준비 중인 김모(15)양은 “학교 측에서도 평가를 위해서 외국어에 대한 관심이 많은 학생들 뽑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서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외고에 진학하는 게 현실인데 대입을 위해서 거짓말 경쟁을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수시 모집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면서 일각에선 미리 가고싶은 대학과 전공에 맞춰서 교내ㆍ외 활동과 자기소개서를 컨설팅 받는 경우도 생겼다.

경영학과를 진학을 원하는 이모(17)양은 아직 고3이 되려면 2년 가까이 남았지만 이미 자기소개서의 뼈대를 만들어놓은 상태다.

이양은 “마케팅 광고영상 만들기, 경영서적 읽기, 해외 신문기사 스크랩 등 앞으로 해야할 활동을 정해놨다”며 “자소서에 맞춰서 생활하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대학을 가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시기에 자아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서미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상담연구부장은 “청소년 시기에는 자아에 대해 충분한 고민의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한데 한국의 학생들은 직업과 전공을 빨리 정해야 한다는 압박을 많이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대학에 가서도 본인과 맞지 않아서 우울해 하는 학생들도 많다”며 “뒤늦게 진로에 대해서 혼란스러워 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자신이 정말 원하고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고민해보는 게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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