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국제청소년의 날①] “너희 집 몇평이냐” 질문에 상처…청소년, 웃음이 사라졌다
- 또래 대화 중 집안 형편 질문에 ‘열패감’
- ”가구 소득 낮다고 느낄 수록 우울증ㆍ스트레스↑“ 연구결과
- “미래 준비할 여력 없다는 사실에 좌절감”




[헤럴드경제=원호연ㆍ정세희 기자]“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좋은 가방 옷 사입는데 농사를 짓는 집에서 자란 저는 아무리 아르바이트를 해도 그런 돈을 모을 수가 없었죠. 서운함을 표시하며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다보니 맞기도 하고 결국 불면증에 시달리다 우울중으로 입원 치료까지 받았어요”

경기도 남양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온 이모(24ㆍ여) 씨는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고개를 가로젓는다. 한창 개발이 시작되던 남양주의 학생들은 늘어가는 빈부격차를 몸으로 체험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씨는 “어릴 적부터 계속해서 나와 남을 비교하고 왜 이런 집에서 태어났을까 자책하다보니 스스로 상처를 받고 열등감이 축적됐던 것 같다”며 자신의 우울증이 서로 다른 경제상황에 놓인 학생들끼리 비교하는 사회 문화가 불러온 비극임을 강조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 심해지는 경제적 양극화가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질병관리본부의 ‘청소년건강행태온라인조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 자신의 가구소득이 가장 낮다고 생각한 청소년은 높게 평가한 청소년에 비해 스트레스 및 자살 생각을 경험할 위험이 2.3배, 우울감을 경험할 위험이 1.8배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청소년기는 다른 생애주기에 비해 학업 스트레스, 불안, 성문제 등 여러 정신 건강상 문제를 겪게 되는데 가구 소득이 낮거나 거주 환경이 불안정할 경우 경제적 불평등, 상대적 발탁감으로 인해 개인의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가정형편이 다른 학생에 비해 나쁘다고 느끼는 청소년들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쉽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족한 용돈을 보충하기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등학생 [헤럴드경제DB]

청소년들은 또래 간의 대화에서 자신의 처지를 남과 비교하고 남보다 경제적으로 열악하다는 것을 확인할 때 심리적 위축감을 느꼈다. 서울시 송파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중학생 정모(15) 군은 “휴먼시아 단지에 사는 애들보고 휴거(휴먼시아 거지)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며 “나에게 직접한 얘기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아이들은 방학에도 학원에 가느라 바쁠 때 에어컨도 없는 집에 가만히 누워만 있다보면 우울해지지만 다른 가족들도 아픈데가 많은데 병원에 가볼 생각은 못 한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김모(15) 양은 “요즘은 초등학교 때부터 ‘너희 집은 몇평이냐’, ‘아버지 직업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며 “좋은 집, 돈 많이 버는 아버지 얘기를 들을 때마다 공부를 잘해서 꼭 성공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공부조차도 돈이 많이 들어서 절망스럽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미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상담연구부장은 “청소년시기 갖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싶은 것도 많은 시기인데 경제적으로 어려움 친구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학생들과 비교되면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구들은 맞벌이 부모가 있거나 부모의 교육 지도를 덜 받는 경우도 있어서, 인터넷을 많이 한다거나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는 등의 다른 문제와 연결돼 고통을 겪는 경우도 많다”고 우려했다.

김양처럼 청소년들은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 능력을 습득하는 해야 하는 때에 자신을 뒷받침해줄 부모의 경제력이 부족하면 자신의 미래 자체가 어두워진다는 점을 깨닫고 더욱 좌절한다.

실제로 어려운 가정형편에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 밖에 없어 열패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중학교 때 외고에 진학하려고 했지만 외고에선 해외 어학연수나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진학을 포기했다”는 오모(18) 양은 “교내외 활동이 중요해졌는데 다 돈이라서 부모님을 원망하고 반항하면서 사이도 나빠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교관이 되고 싶었던 꿈은 다 사치인거 같아서 패배감에 우울증에 빠졌다”고 했다.

서 부장은 “경제적인 상황을 학생이 한꺼번에 바꿀 순 없겠지만 상담기관이나 정부 기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 학습 지도 등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부모들 역시 학생들에게 관심을 갖고 우울함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줘야 어른이 돼서도 트라우마에 빠지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why37@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