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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의금 안내면 법적 대응”…’폰트 저작권 사냥꾼‘ 기승
-’민·형사 조치하겠다‘며 수백만 원 요구, 폰트 분쟁 전문 로펌도 등장
- 파일 무단 도용 아닌 ’서체 디자인‘은 저작권 인정 안돼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서울에서 중소 사업체를 운영하는 A(42) 씨는 얼마 전 회사로 날아온 우편물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Y디자인 회사가 보낸 것으로 A씨가 운영하는 업체가 자사가 만든 글자체(폰트)를 무단 사용했다는 내용이었다. Y사는 합의금으로 300만 원을 요구했고, A씨가 확인해보니 유튜브 동영상 자막이 Y사가 만든 서체와 모양이 같았다. 얼마 뒤에는 Y사를 대리하는 W법률사무소 명의로 더 강한 어조의 으름장이 시작됐다. A씨를 향해 ‘의뢰인(Y사)를 기만하고 있다’고 적은 뒤 ‘양벌규정(회사와 직원 모두를 처벌하는 규정)’을 언급하며 민사는 물론 형사 대응까지 하겠다고 적었다.

이른바 ‘폰트 저작권 기획 분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A 씨는 W법률사무소의 요구에 응할 필요가 없다. 판례상 글꼴(서체) 자체는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창작물이 아니다. 글의 모양을 고안하는 과정에서 일부 창작성이 포함될 수 있지만 별도로 감상할 정도의 독자적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폰트 저작권은 ‘폰트 파일 자체’를 무단 사용한 경우에만 문제가 된다. 이 경우에는 글자 디자인이 아니라 프로그램 저작물로서 저작권법 보호를 받는다. 만일 파일 자체를 무단으로 사용해 문제가 됐다면 그 파일을 직접 다룬 게 누군지를 따져 봐야 한다. 중소기업은 홈페이지 제작이나 유튜브 동영상은 외부에 제작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는 폰트 파일을 직접 다운받아 사용한 컨텐츠 제작자가 책임을 진다.

법원 판례가 있는데도 법률사무소가 나서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 소송을 진행하기보다 합의금을 받아내는 게 목표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폰트 사용자를 찾고 동일한 내용의 우편물을 보낸다. 디자인 업체 측에서도 손해볼 게 없기 때문에 법률사무소에서 제안이 오면 응하는 경우가 많다. 대리권만 위임하면 폰트 사용 사례를 찾아내는 단계에서부터 돈을 받아내 수수료를 떼는 일까지 업체가 전혀 신경쓰지 않도록 하는 법률사무소도 있다.

인터넷에서 W법률사무소 이름을 검색하면 같은 내용의 금전 요구를 받았다는 내용이 여러 건 검색된다. W법률사무소 외에 J법무법인, 또 다른 W법률사무소 등도 업계에 ‘폰트 저작권 사냥꾼’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 폰트 파일을 무단 사용해 저작료를 내면 문제가 안되지만, 필요 이상의 합의금을 요구하거나 저작권법을 위반하지 않았는데도 ‘법적 대응’이라는 말에 겁을 먹고 돈을 주는 사례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내용증명을 받으면 간단한 법률상담을 통해 실제 저작권법 위반 소지가 문제될 수 있는지를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법무법인 창천의 박건호 변호사는 “저작권법 위반을 언급하면서 소프트웨어를 강매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데, 이런 경우는 오히려 디자인업체 쪽의 공정거래법 위반이나 협박죄 여부가 문제될 소지가 있다”며 “섣불리 돈을 보내거나 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피해사례가 늘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는 ‘폰트 파일에 대한 저작권 바로 알기’를 인터넷을 통해 배포하기도 했다. 폰트 저작권의 보호 범위와 관련 분쟁 대응법을 담은 일종의 매뉴얼로,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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