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축제의 핵심으로 부상
‘키치(Kitsch)’ 보다 한 단계 아래
모짜르트와 모짜렐라, 여름은 ‘썸’
청년층,어린이도 곧바로 포복절도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추장 위는 고추장이여. 글로벌이 좋은 줄 알아? 글로 벌 받는 거야…어르신들은 ‘나이야가라’ 폭포를 좋아하지. 젊은 대학생들은 방학 마치면 강해져. ‘개’강하잖아….”
아재개그가 창궐하고 있다. 요즘은 젊은 세대에서 조차 아재 개그 팬들, 습성 등이 확산되는 분위기이다.
무더위에 지쳐 깊게 생각하거나 사색하기 싫은 계절이라 그런지, ‘단순 갖다붙이기’식 아재개그가 더 잘 먹히는 느낌도 든다.
아재개그의 특징은 대체로 ▷단순 무식 음율 맞추기 ▷맥락없이 뭔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슬그머니 다른 성질의 것으로 둔갑시키기 혹은 같은 선상 배치 ▷견강부회(牽强附會) 식 조어 등이다.
‘신촌에 불시착한 우주선’을 계기로 어른이든 아이든 물총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냥 물총싸움을 하자니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흥미유발형 우주선 소재를 갖다붙였다. [사진제공=연합뉴스] |
▶김광석의 ‘wkf tkfwl?’= 살아 생전 ‘아재개그’와 ‘허무개그’를 잘 했다던 가수 고(故) 김광석이 PC통신 시절 영문 자판 모드에서 친 ‘wkf tkfwl?’은 차라리 잠시 호기심이라도 낳는다. 한글 자판 모드에서 친다면 ‘잘 살지?’인데, 작년 여름 김광석 20주기 전시회 제목이었다.
아재개그는 그 유치찬란함때문에 굳이 문화로 분류한다면 ‘C급’쯤 아닐까 싶다. 유치한 고급문화의 아류, ‘키치(Kitsch)’ 보다 한 단계 아래인 느낌도 준다.
C급 아재개그가 감성의 계절 여름에 A급 이벤트 타이틀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해하기 쉬운 개그이다 보니 어린이도 아재들의 개그에 끼어들수 있다.
▶모차르트 안에 모짜렐라 있다?=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는 오는 8~13일 어린이를 위한 클래식 음악동화, ‘모차르트와 모짜렐라의 마술피리 이야기’ 공연을 한다. 모차르트가 모짜렐라 치즈를 좋아했다는 얘기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요즘 치즈의 대세인 모짜렐라를 모차르트 곡에 스토리를 입힌 악극 제목에 갖다붙인 것이다.
‘신동일 제작팀’은 “모짜렐라는 모차르트 마음속에 살고 있는 이야기 친구인데 이번에 마술피리 모험에 함께 한다”고 설명했다. 대단한 아재들이란 말 밖엔….
▶필요한 것만 갖다 붙이기= 오는 19~20일 미아동 북서울꿈의숲 아트센터에서 서울시 주관 어린이 연극 ‘수박 프로젝트’가 공연된다. 그냥 여름철 청량감을 주는 먹거리라 수박인줄 알았다. 아재들은 굳이, 수박이 왜 수박인지 조악하게(?) 제시한다.
‘여름방학’의 영어표기 즉 ‘SUmmer-VACation’에서 딱 필요한 이미셜만 떼어냈다. 써머 버케이션이니 ‘써버’가 이니셜 따붙이기식 조어의 상식인데, ‘SU-VAC’만 떼어냈다. ‘초딩’들 조차 손쉽게 이해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양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휴전선, 군인아저씨, 펀치볼, 금강산 남쪽 끝자락 청정 계곡, 씨레기 등 로컬푸드 등이다. 그런데 지난30일까지 사흘간 ‘배꼽’ 축제를 열었다. 역대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배꼽 축제를 열게 된 이유는 한반도 위도, 경도상 양구가 국토 정중앙 즉 배꼽이라서 그랬다고 한다.
▶장난꾸러기 같은 군수= 축제의 컨셉트는 양구의 일반적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국민 배꼽잡게 하는 모든 것’이다. 이번 축제에선 브라질 배꼽춤(밸리댄스) 무용수들의 퍼레이드, 개그맨이 출연한 ‘배꼽 개그 콘서트’, 남녀노소가 참여하는 물총놀이 ‘물난리 WAR’ 등이다. 춤 못 추게 생긴 군수는 배꼽(벨리)댄스 동호인 단체인 대한실용무용총연맹 회장을 맡고 있다. 이 축제는 타이틀에서 콘텐츠까지 온통 ‘아재개그’이다.
‘Summer’에서 ‘썸’만 따내 청춘남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콘텐츠로 구성한 삼척 썸축제(26일 종료)나, 제철 용광로로 대표되는 열과 철의 도시인데, 열을 빛으로 슬그머니 둔갑시켜, 여름밤 빛의 메카로서 손님을 대거 끌어모은 포항국제불빛축제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지난 30일 끝난 신촌 물총 축제의 부제 ‘신촌에 불시착한 우주선’은 물총싸움이 벌어지게 된 이유를 설명하느라 별다른 이유 없이 갖다붙인 것이다.
▶원숭이 엉덩이는 백두산= 여름철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광명동굴의 전반적인 짜임새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결국 백두산이 되는’ 맥락 없는 연결의 아재개그 컨셉트이다.
원래 폐금광인데, 슬그머니 동굴로 둔갑시키더니, 동굴이라 괴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여겨 뉴질랜드 기술팀에 의뢰해 영화 ‘반지의 제왕’의 그 용(龍)을 배치하고, 상온의 서늘함이 유지된다는 이유로 광명시나 폐금광의 이미지와는 연결성 없는 ‘와이너리’를 뒀다.
“사나이는 왜 찾누?, 맛있으면 그만이지.”
맛 있기만 하다면, 즐겁기만 하다면, 치밀한 맥락 맞추기는 필요없다는 것이 아재개그 정신이다. 세상에, 앞뒤 잘 맞는 말만 필요한 게 아니라, 헛웃음을 유발하는 C급 개그도 중요하다는게 신봉자들이 아재개그를 맞는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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