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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과와 책임은 다릅니다”…홍콩, 쉽게하는 ‘사과법’ 제정
도의상의 사과도 꺼리는 문화
‘혐의 시인행위와 다르다’ 인정

홍콩이 최근 사과와 책임을 구분하는 일명 ‘사과법’(Apology Law)을 제정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혐의를 시인하는 행위와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법안이다. 분쟁 당사자가 자신의 사과 발언이 향후 법정에서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것을 걱정하지 않고 상대에게 사과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8일 민사소송 및 비(非) 형사소송 당자의 후회나 동정, 인정(人情) 등의 표현을 법정에서 잘못을 시인한 증거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제정됐다고 보도했다. 해당 법안은 지난 12일 홍콩 의회인 입법회(정원 70명)에서 찬성 46표, 반대 2표로 통과됐다.

사과법이 통과되면서 소송 당사자의 사과표현은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 특정 면제 및 배제대상이 됐다. 즉 분쟁 당사자는 구두는 물론 서면으로 미안함을 표현하더라도 법정에서 불리해지지 않는다.

기존 법체계에서 소송 당사자는 사과 표현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증거로 사용될 것을 우려해 ‘도의’ 상의 사과조차 꺼려야 했다. 홍콩 법무부 조사에 따르면, 홍콩 안팎의 변호인들 대다수가 의뢰인에게 사과나 애도, 동정의 표현을 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의료사고 분쟁시, 의사들은 환자에게 위로나 사과의 말을 건넬 시 과실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인간적인 미안함의 표현조차 자제해왔다. 의사와 환자 가족 간의 감정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재난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012년 39명이 사망한 홍콩 페리 여객선 사고 당시, 홍콩 해양부는 법적 자문을 받아 입장발표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장장 8개월간 사과나 유감의 뜻을 표명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홍콩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켜 사과법 제정 논의를 촉발시킨 발단이 됐다.

홍콩 정부는 사과법이 갈등 당사자의 충돌 수위를 낮추고 빠른 시일내 합의를 가능케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사과법의 최대 수혜자가 정부일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즉각적인 사과를 남발할 경우 사과의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유진 기자/kac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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