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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스토리-김종인] 균형의 정치 임무 마치고 야인으로 돌아온 노신사
-프랑스 마크롱 책 탐독하며 세상 읽어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타고난 정치 후배 양성은 꿈

[헤럴드경제=최정호ㆍ박병국 기자]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현존하는 정치인의 단수를 매겨 차곡차곡 피라미드를 쌓는다면 그 꼭대기에는 아마 김 전 대표가 있을 것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등이 정치판을 읽는 인물이라면, 김 전 대표는 판을 짜고 그 판 위에서 말(馬)을 움직이는 인물이라는 평가가 적당하다. 보수의 제갈량으로 꼽히는 윤여준 전 장관은 “김종인 전 대표에 비하면 나는 한참 하수(下手)”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경제민주화’라는 신조어도 김 전 대표를 설명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말이다.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경제분과위원장으로 헌법 제119조 2항에 ‘경제민주화’ 문구를 넣은 장본인이다. 지난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선대위원장을 맡으며 당시 새누리당에서 경제민주화를 선거전면에 내거는 작업을 주도 했다. 민주당 대표를 맡았던 지난 총선때는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메시지(정치력)와 콘텐츠(정책)가 모두 있는 정치인”으로 그를 평가했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지난해 총선에서 민주당에 깜짝 승리를 안 긴 김 전 대표는 다시 대선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내민 손을 잡으며 ‘반문 연대’의 키맨(key man)으로서 제3지대 구축을 도모하기도 했다.

김 전 대표를 최근 그의 광화문 사무실에서 만났다. 대선 이후 언론 인터뷰는 헤럴드경제가 처음이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무엇보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의 저서 ‘경제철학의 전환’이 책상위에 올려져 있고, ‘기업구조조정, 장애요인과 해소방안’이란 제목의 보고서도 보인다. 좌파 진영의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대항에 우파진영이 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도 눈에 띈다.

독일어로 쓰인, 프랑스 대통령 엠마뉴엘 마크롱의 저서 ‘혁명’은 책상위에 펼쳐져 있었다. 두번 째 읽고 있다고 했다. 마크롱은 지난 5월, 좌도 우도 아닌 제3의 길을 표방하며 프랑스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김 전 대표가 지난 대선 때 도운 안철수 전 대표가 닮기를 희망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제3지대의 실패 그리고 안철수=대선 전 비문(非문재인)진영은 이른바 제3지대의 성공여부에 주목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안철수 전 대표, 정의화 전 국회의장, 정운찬 전 총리 등 비문세력들은 모두 친박(親박근혜), 친문의 패권에 폐해를 주장한 바 있었고 이들이 연대해 단일 후보를 만들어낼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특히 제3지대를 엮어낼 인물로 민주당 내 비문 진영 좌장이었던 김종인 전 대표가 거론됐다. 그는 결국 대선을 한달 여 남겨두고 민주당을 탈당을 했지만 제3지대를 만드는데는 실패했다.

김 전 대표는 “제3지대라는 것이 말로는그럴 듯 했는데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하지 못했다”며 “이미 각 정당이 후보를 다 뽑은 상태였다. 그때는 이미 제3지대가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안 후보, 유 후보 등이 모여 제3지대를 논의할 테이블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얘기다.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는 대선 직후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후보 단일화 논의가 성사 직전까지 가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이해 관계에 결국 실패했다고 선거 후 회고했다.

김 전 대표는 최근 정치권에서 ‘제3의길’이 전세계적인 흐름이라며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을 표방하고 있다는 질문에 ‘마크롱 전문가’다운 소신을 거침없이 피력했다. “한 국가에 역사적 바탕이 다르면 그걸 모방을 할 수가 없다”는게 그의 결론이다. 여기에 더해 “국민의당에는 (제3의 길을 갈) 사람이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양당제를 하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히다”며 “국민의 의사를 다양하게 수용 한다는 점에서 다당제가 낫다”는 말로 희망은 이어갔다.

안철수 전 대표에 대해서는 혹평을 쏟아냈다. 그는 “안 전 대표는 정치를 할 사람이 아니더라”고 했다. 안 전 대표는 서울시장으로 물망에 오르던 2011년 그를 자신의 ‘정치적 멘토’로 꼽은바 있다.

국민의당이 이른바 ’문준용 취업특혜의혹 증거 조작 사건‘으로 존폐 위기에 놓이고, 안철수 전 대표의 정치인생이 기로에 서있는 것에 대해서도 “안 전 대표는 자기 스스로가 그렇게(위기에) 될 수 밖에 없다(처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라며, “지도자는 어느 정도 태생적으로 타고나야 한다. 노력을 해서 지도자가 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이런 예술가를 보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어느수준까지는 간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가려면 선천적으로 타고난 자질이 없으면 안된다. 정치도 똑같다” 정치 고수가 본 정치인의 필수 덕목이다. “나라를 이끌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독재했다 망한사람이기는 하지만 이승만, 박정희 두 사람 정도”라는 평가도 내렸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새누리당 선대위원장, 민주당 대표…그리고 배은(背恩)= 그럼에도 대선 기간 안 후보를 지원한 것은 개혁공동정부추진위원장이라는 소신 때문이다. “나는 국민의당에 들어가지도 않은 사람”이라며 “공동정부의 필요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 수락 한 것”이라고 한국판 ‘마크롱 혁명’을 성공하지 못한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누가 나보고 ’대통령 컨설팅‘을 해달라고 하면 컨설팅비용을 100억원 정도 받고 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한 세 번째 (선거를) 해봤는데 정치인들은 신분이 바뀌면 사람이 확 바뀌어 버리더라”

김 전 대표를 향해 호사가들은 ‘오락가락’, ‘배반’이란 단어를 쓰기도 한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어려운 시기의 새누리당, 민주당의 재건을 이끌어 냈지만 남는게 없더라는 말로 비판을 맞비판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있을 때를 회상하며 “새누리당이 선거 마지막까지는 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면서 “그런데 (대선) 끝나고 볼장을 다 보고 나니 나를 외면하더라. 정치라는 것이 그렇다”고 했다.

지난해 비대위원장이 돼 총선 승리를 이끈 민주당에 대해서도 “이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사정사정해서 갔는데, 당시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노추(老醜)‘가 어쩌고 그래서, 더이상 이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꺼버려야 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김 전 대표는 인터뷰 하는 동안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는 말을 강조했다. 특히 앞으로 정치권에서 김 전 대표를 찾아도 호응하지 안을 거냐고 묻자 “안 한다”며 “나만 손해를 본다”고 답했다. 다만 “지금까지 해봤는데(도움을 줬는데) 별로 의미가 없다”고 밝히면서도 “내가 사람(제대로 된 정치인)을 잘 찾으면, 이 사람은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얘기를 해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 정치의 성공 필수 관문= 김 전 대표는 지난 대선 동안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각을 세웠지만, 새 정부의 두 달에 대해선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며 평가를 보류했다. 다만 “원래 대통령에 당선되면 구름위로 올라간다“며 ”구름위는 항상 태양이 있으니 모든게 밝다고 황홀에 빠질 수 있다. 여론조사 결과도 다 좋다”며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 대해 평가했다. 이어 “거기서 세월을 많이 보내고 나면 나중에 구름이 걷혀서 땅이 보일 때면 시간이 촉박해지고 그런 것”이라고 꼬집었다.

성공한 정부,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자세’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관계가 대표적인 예다. 현 정부, 또 지난 정부 모두 남북 분단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뜬구름 잡는 해법만 내놓고 싸웠다는 것이다.

김 전 대표는 “우리나라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며 주변국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나라에 의해서 남북한이 분단됐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협조가 없으면 통일은 안된다”며 “동독의 경우는 소련이 망해서 통일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북한의 존립을 원하는 중국이란 나라가 망하는 것은 고사하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지 않는 한 통일은 힘들다”고 했다.

김 전 대표와의 인터뷰는 1시간 30여분 동안 진행됐다. 리더십에 대해 얘기를 할 때는 싱카포르 총리를 지낸 리콴유, 독일수상 헬무트 슈미트, 미국 국무장관인 헨리 키신져 등을 언급했으며 통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중국의 동북3성에 대한 두려움을 역사책 속에서 끄집어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을 언급하면서는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역사가 줄줄이 나왔다.

78세 노(老)정객은 새벽 5시에 일어나면, 영미신문부터 시작해서 독일 신문, CNN 방송부터 유로티비(Euro TV)까지 전 세계 언론매체를 훑기에 바쁘다. 가벼운 운동과 함께 광화문 자그마한 사무실에 출근해서는 경제관련 연구를 하는 것이 하루 일과다. 찾아오는 손님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다. 그는 ”정치인을 만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이른바 국회에 있는 김종인 키드(kid)중 한명의 의원은. 정국이 난마 처럼 얽히면 그를 찾는 정치인들이 많다고 기자에게 귀띔하기도 했다.

김종인 주요 이력

1958년 ~ 1964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 학사

1964년 ~ 1972년 뮌스터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 박사

1973년 3월 ~ 1988년 2월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1981년 4월 ~ 1985년 4월 제11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 전국구)

1985년 4월 ~ 1988년 4월 제12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 전국구)

1989년 1월 ~ 1989년 7월 국민은행 이사장

1989년 7월 ~1990년 3월 보건사회부 장관

1990년 3월 ~ 1992년 3월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1992년 5월 ~ 1994년 9월 제14대 국회의원(민주자유당 전국구)

2004년 5월 ~ 2008년 5월 제17대 국회의원(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2011년 12월 ~ 2012년 3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2012년 9월 ~ 2012년 12월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

2016년 1월 ~ 2016년 4월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2016년 1월 ~ 2016년 4월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2016년 5월 ~ 2017년 3월 제20대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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